■ 양측 진흙탕 싸움… 중간 브리핑 신경전에 1시간반 허송
“이게 새 정치라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아름다운 단일화’를 약속했지만 단일화의 세부적인 룰을 둘러싸고 양측이 유불리에 집착하면서 두 후보의 다짐이 빛바래고 있다.
나흘이나 공전하던 단일화 협상이 18일 두 후보의 단독 회동을 통해 가까스로 봉합됐으나 양측은 협상이 재개된 바로 다음 날인 20일 ‘사과 요구’ ‘재발 방지’ ‘언론플레이’ 같은 표현을 써가며 서로에게 총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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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아무리 일임했지만…” “일임해 놓고…”
18일 문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여론조사 방식이든 ‘여론조사+α’든 단일화 방안을 안 후보 측이 결정하도록 맡기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안 후보는 “단일화에 제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이루겠다”고 화답했다. 안 캠프 관계자들은 “그래도 우리에게 유리한 방식을 고집하진 않겠다”고 공언했다.
19일 협상에서 안 후보 측은 여론조사와 공론조사를 병행하자고 제안했다. 공론조사의 경우 배심원은 민주당 쪽에서 중앙대의원 1만4000명을, 안 후보 측은 후원자 중에서 1만4000명을 무작위 추출해 구성하자고 했다. 문 후보 측은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우상호 공보단장은 20일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안을 들고 와 통 큰 양보를 요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축구를 하자고 해서 ‘좋겠다’고 했더니 우리한테는 ‘발만 쓰라’고 해놓고 자기네는 손, 발, 머리 다 쓰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불쾌해했다.
안 후보 측 송호창 공동선대본부장은 “다 일임한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맞받았다.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도 “양보 얘기는 이제 그만하는 게 맞다”고 문 후보의 양보론에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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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은 협상 과정을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협상 내용이 곧장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유출 책임을 두고 ‘네 탓 공방’을 벌였다. 우 단장은 20일 오전 브리핑을 자청해 “안 후보 측으로부터 협상 내용이 새나가고 있다. 언론플레이성 언급은 협상의 성패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그동안 ‘맏형’으로서 꾹 참고 양보하고 인내했지만 방어 차원에서 공개할 수밖에 없다”며 이례적으로 전날 협상 내용을 낱낱이 공개했다. 문 후보 측 협상팀원인 김기식 의원도 페이스북에 “아무리 정치라지만 이런 언론플레이는 정말 아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날 저녁에도 양측은 브리핑 문제로 설전을 벌였다. 우 단장이 정회 직후인 오후 8시 15분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투명하게 진행하겠다”며 중간 브리핑을 하자 안 후보 측 정연순 대변인은 “신뢰를 깨뜨리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안 후보 측은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바람에 협상은 오후 9시에 재개하기로 했다가 10시 35분에야 속개됐다.
③ “합의? 그때그때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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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문 후보 측 ‘새정치위원회’ 정해구 간사는 라디오에 출연해 “안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면 축소 쪽으로 갈 가능성이 많고, 문 후보가 단일후보로 정해지면 축소가 아니라 정수 안에서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것으로 간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명쾌한 합의는 없었다는 얘기다.
④ 관전자들의 장외 공방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각각 문 후보와 안 후보를 응원하는 글을 트위터에 띄웠다. 이를 통해 이들이 누구를 지지하는지도 드러났다.
조 교수는 안 후보 측이 제안한 공론조사 방식에 대해 “안 후보 측이 자신에게 제일 유리한 방안을 내놓았다. 문 후보 지지자들이 격분하고 있다”며 “열 가라앉히고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안 후보는 동등한 후보이지 동생이 아니다”라며 문 후보 측의 ‘맏형론’을 비판했다. 그는 “문 후보 ‘양보’ 발언의 진정성을 믿었다가 너무 실망스럽다”며 “민주당이 국민 중심이 아닌 민주당 중심에 사로잡힌 듯해 안타깝다. 우리 모두 위대한 각성을…”이라고 덧붙였다.
최우열·손영일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