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 키우는 가정폭력]<下>친권보다 소중한 아동인권
“때리지 마세요”… 아동학대예방의 날 기념 공연 19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12 아동학대예방의 날 및 아동학대예방주간’ 기념행사에서 아동학대예방 홍보대사 어린이들이 아동학대 예방과 방지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방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는 폭력 아빠에게 시달리다 옮겨온 아이들이 살고 있다. 이곳 상담원들은 매일 폭력 아빠들과 전쟁을 치른다. 이곳에서 ‘부모 자식 사이는 천륜(天倫)’이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처럼 보인다. 조직폭력배 A 씨(34)는 술만 마시면 문신을 드러낸 채 시설로 찾아와 초등학교 4학년 아들(10)과 1학년 딸(7)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협박을 일삼는다. 결혼 초 아내와 다툼이 잦았던 A 씨는 화가 나면 물건을 부수거나 아이들을 때리며 화를 풀었다. 아내가 집을 나가자 A 씨는 “엄마를 닮은 너희를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했다.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폭력 아빠는 술병을 들고 나타나 협박하기도 했다. 심지어 “시설이 내 아이를 납치해갔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적반하장의 폭력 아빠도 있다. 이들은 “나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맞고도 잘 자랐다” “내 방식대로 내 아이를 키우는데 웬 참견이냐”며 ‘친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아빠에게도 친권과 천륜을 인정하는 게 타당한 일일까.
○ 폭력 아빠와 과감한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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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이던 B 양은 고시텔에서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아버지는 B 양이 문 밖을 나서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 마구 때렸다. 주변 사람들의 신고로 상담원이 찾아갔지만 B 양은 면담을 거부했다. 다음 날 B 양 아버지는 상담원을 만났다는 이유로 딸을 때렸다. 다시 상담원이 찾아갔을 때도 “아버지와 지내고 싶다”며 도움을 거부했다. ‘아빠’라는 울타리 외에 다른 보호자를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다. 상담원이 1년 가까이 일주일에 한 번씩 B 양을 설득한 끝에야 B 양은 시설 입소에 동의해 폭력 아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시설 관계자는 “폭력 피해 아동이 시설이 아닌 부모의 사랑 속에 원래 가정에서 크는 게 상처를 치유하는 데 가장 이상적”이라면서도 “일단 데려가고 나면 대부분 폭력 아빠는 반성하기는커녕 아이가 배신하고 도망갔다며 보복성 폭력을 휘둘러 아이의 상처를 키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재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위급한 상황이면 72시간 동안 아동을 폭력 아빠로부터 격리해 병원 응급치료를 받게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친권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자녀가 부모와 함께 있기를 원하면 아동보호기관에서 손쓸 방법이 없다. 대부분 폭력 아빠들은 자녀가 병원 치료를 마치면 “아빠와 함께 살자”고 설득한다고 한다. 굿네이버스 경기도 아동보호 전문기관 김정미 관장은 “B 양처럼 어린 나이에 폭력에 노출된 어린이는 자아가 약해 아버지의 생각과 자신의 뜻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즉각 친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 폭력 아빠에게 처벌과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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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아이를 더 안전하게 보호해야 폭력이 대물림되지 않는다”며 “아동학대방지법에 자녀 폭력 근절을 위한 강한 조치를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 학대 예방사업 후원 문의는 굿네이버스(1599-0300), 아동 학대 신고는 1577-1391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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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상·김태웅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