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첫 3000디그 삼성화재 여오현
배구의 리베로는 고독한 포지션이다. 몸을 날리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지만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다. 최근 3000디그를 달성한 삼성화재 리베로 여오현은 “내가 받지 못하면 곧바로 실점이 된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짜릿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스포츠포커스 제공
한국 최고의 리베로 삼성화재 여오현(34)의 두 팔엔 주삿바늘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꼬집어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여오현은 그 두 팔로 13일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최초로 통산 3000디그(상대 스파이크를 받아내는 것)의 금자탑을 쌓았다. 공격수가 아닌 수비 전문 선수가 프로배구 전체 연봉 4위(2억4500만 원)라는 건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통산 리시브 역시 19일 현재 4392개로 그가 1위다. 2위 최부식(대한항공·3336개)과는 1000개 이상 차이가 난다.
“디그 3000개를 했다고 크게 기쁘고 그런 건 없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배구를 했구나 하는 정도죠. 아, 뒤를 돌아보고 초심을 기억하는 계기가 된 건 수확이랄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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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만 해도 내가 힘들게 받아 득점으로 연결된 건데 공격수만 알아주는 것 같아 서운했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해요. 팀이 이기는 게 먼저니까요.”
그의 키는 175cm다. 또래 한국 남자 평균보다는 크지만 200cm 이상의 장신들이 즐비한 코트에서는 작게만 보인다.
“어릴 때 키 크려고 안 해본 게 없어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게 해달라고 매일 밤 자기 전에 빌었죠. 그래도 안 컸어요. 대학에 입학해서는 배구를 시작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어요.”
멈출 것 같던 그의 배구 인생에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은 대학 2학년 때 ‘리베로’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였다. 레프트였던 그는 망설임 없이 리베로로 전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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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오현은 홍익대 4학년이던 2000년 12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화재의 지명을 받았다. 이후 많은 공격수들이 팀을 거쳐 갔지만 그는 12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12년 동안 대표팀 명단에서도 빠진 적이 없던 그는 올 중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봐요. 훈련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그래서 대표팀에서 빠지겠다고 한 건데…. 글쎄요. 꼭 필요하다고 불러 주시면 뛰어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는 “선수 생활 오래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이 결정할 일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리베로의 최고 덕목은 성실함이에요. 앞에서 빛나기보다는 뒤에서 받쳐 주고 도와주는 일에 만족을 느껴야 하죠. 성실하게 뛰다 보면 그만큼 선수 생활을 오래할 수 있겠죠. 그러다보면 통산 4000디그-5000리시브도 따라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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