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중호 국순당 대표
배중호 국순당 대표는 “묵직하면서도 새콤달콤한 옛날 막걸리를 제대로 복원해 아버지 세대에게 잃어버린 즐거움을 되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국순당 제공
지난 몇 년간 내가 막걸리 강의를 다닐 때면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막걸리는 빚은 날의 날씨와 시간 등 작은 환경 차이에 따라 때로는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게, 때로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단맛과 신맛의 차이가 난다. 이는 발효 과정을 거치는 막걸리의 특성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 팔도에는 집집마다, 고을마다, 가문마다 특색 있는 막걸리가 있었다. 알코올 도수도 3도부터 16도가 넘는 것까지 각양각색의 막걸리가 우리 민족과 함께한 것이다.
양조장에서 갓 빚은 막걸리를 주전자에 넘치도록 담아 나르던 시절, 특별한 안주가 없어도 막걸리 한 사발이면 입이 호강이었던 그 시절의 막걸리 맛은 대한민국 아버지들에게 고단한 하루를 잊을 수 있게 해주는 즐거움이었다.
파릇파릇한 10대였던 1960년대 초반, 어른들 몰래 맛보던 막걸리 맛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입안 가득 막걸리를 들이켤 때면 느껴지던 묵직한 질감과 새콤함, 달콤함이 어우러진 긴 여운은 근사했다. 그때에 비하면 미각과 후각이 모두 크게 떨어졌지만 난 요즘도 그날의 막걸리가 그립다.
옛날 막걸리의 색감은 우유 빛깔의 요즘 막걸리와 달리 진한 볏짚 색을 띠고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전통 밀누룩의 색깔이 자연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배어든 까닭이다. 탁도도 요즘 막걸리와 달리 너무 맑지 않고 적당하게 걸쭉했다.
오늘날 막걸리에서 희고 뽀얀 색깔이 돌고 가벼운 신맛이 나는 것은 바로 누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막걸리를 빚을 때 일본식 누룩인 ‘고지’를 쓰면서 발효 과정에서 구연산이 많이 발생한 결과다. 1960년대 막걸리를 기억하는 사람들로서는 요즘 막걸리가 마시기는 편하지만 맛에 깊이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때문이다.
30년 넘게 막걸리를 빚어온 내게 1960년대 추억의 막걸리 맛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일은 무겁고도 큰 과제다. 숱하게 실패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막걸리 맛을 제대로 되살려내고 싶다. 단절된 우리 술의 역사를 잇는 맛의 고리를 복원해 그 시절을 기억하는 내 아버지 세대가 생전에 다시 삶의 향기가 가득한 막걸리를 들이켜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리=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