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임의 선구자 유진규씨… 19∼24일 데뷔 40년 기념공연후배들이 대표작 헌정공연도
국내 마임의 선구자, 1세대 마임이스트, 춘천마임축제 탄생의 주역….
유진규 씨(60·사진)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한둘이 아니다. 마임을 논할 때 유 씨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국내 마임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마임을 시작한 지 올해로 40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19∼24일 춘천 축제극장 몸짓에서 ‘마임 인생 40년, 발가벗은 유진규’ 공연과 전시가 펼쳐진다. 공연을 앞두고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를 14일 춘천의 한 교외에서 만나 40년 추억을 되짚어봤다.
그가 마임을 처음 접한 것은 고교 시절이던 1968년. 독일 마임이스트 롤프 샤레의 공연을 보고 푹 빠져들었다. 1시간 반 동안 말 한마디 없는 공연이었지만 말로 전하는 것 이상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 씨는 당시의 충격을 “살이 떨릴 정도였다”고 표현했다. 이 때문에 1970년 대학에 진학해서도 교내 극단에 빠져 살았다. 급기야 다음 해 말 학교를 그만두고 전위 극단인 ‘에저또’에 몸을 담았다. 본격적인 마임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였다. 유 씨는 자퇴에 관해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못 했다. 그러다 보니 더 좋아하는 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춘천에서 그는 소를 키웠다. 하지만 소 값 파동으로 시련을 겪은 뒤 1987년 소를 모두 처분했다. 앞서 강원대 앞에 문을 연 카페 ‘아름다운 사람’ 운영에 전념했다. 유 씨를 찾아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었다. 카페에서 토요일마다 퍼포먼스를 펼쳤다. 마임으로의 복귀였다.
1988년 마임이스트들과 어울려 마임 열정을 다시 지폈다.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공연을 펼쳤고 1989년 춘천마임축제의 모태가 된 ‘한국마임페스티벌’을 처음 열었다. 그 후 춘천마임축제는 세계 3대 마임축제의 하나로 성장했다. 춘천에 마임 전용극장도 문을 열었다.
예순의 나이에도 그의 마임은 계속된다. 2008년 ‘빨간 방’을 시작으로 ‘하얀 방’, ‘까만 방’ 등 방 시리즈를 잇달아 내놓았다. 앞으로 ‘파란 방’과 ‘노란 방’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40년 기념공연에서 유 씨는 자신의 대표작 ‘빈손’을 공연한다. 후배 마임이스트들이 그의 작품 ‘유언장’, ‘밤의 기행’, ‘건망증’ 등을 재해석한 헌정 공연도 펼친다. 다음 주 6일 동안 춘천은 마임의 세계로 빠져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