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루돌프(안재욱·오른쪽)와 평민 출신의 마리 베체라(옥주현)의 비극적 사랑을 로미오와 줄리엣에 빗대 그려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EMK 제공
이 작품은 ‘엘리자벳’의 성공에서 파생됐다. 하지만 ‘모차르트!’나 ‘엘리자벳’과 달리 오스트리아산(産)이 아니라 미국 작사·작곡가의 작품이다. 미국 브로드웨이의 명콤비 잭 머피(대본, 작사)와 프랭크 와일드혼(작곡), 그리고 ‘엘리자벳’ 국내 공연을 연출했던 로버트 요한슨(연출)이라는 외국인 3인방의 흡인력이 작용한 것일까.
9일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개막한 이 작품은 루돌프로 번갈아 무대에 선 박은태, 임태경, 안재욱의 세 차례 공연이 모두 뜨거운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거기엔 세련된 무대를 만들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극을 수정한 한국 제작진, 그리고 좋은 연기력과 가창력으로 이를 전달한 한국 배우들의 역량이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정치적 상황은 2006년 헝가리 초연 때 극 초반에 역사적 배경에 대한 해설을 삽입해야 했을 만큼 복잡하다. 한국 공연은 이를 생략하거나 과감하게 줄이고 대신 루돌프와 베체라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이를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도와 병치해 풀어간다. 루돌프와 베체라가 처음 만나는 ‘궁정극장’ 공연 장면에서 무대 위를 장식한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잠자리를 하고 난 뒤 아침에 종달새 소리를 소재로 나누는 대사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극 마지막 장면도 영락없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이다. 여기에 ‘사랑이야’ ‘너 하나만’ 같은 와일드혼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어김없이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박은태와 안재욱은 그동안 각각 약점으로 지적받은 연기와 가창력에서 한층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임태경은 황태자에게 꼭 맞는 이미지로 호평을 받았다.
반면 구시대와 새로운 시대에 끼어 고뇌하는 정치가로서의 루돌프의 모습은 원작에 비해 약해졌다. 그 대신 푸른색과 붉은색의 색상을 잘 조합해 만든 화려하고 강렬한 무대가 이야기의 빈틈을 채웠다. 연극 ‘벚꽃동산’에서 마지막에 미니어처 기차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씨는 이번 공연에서도 감탄할 만한 기차 장면을 선사한다.
: : i : :
02-6391-6333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