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삼 논설위원
월성 원전 측은 “사고가 아니라 고장”임을 거듭 강조했다. 원전이 사고가 아니라 고장으로 정지되는 건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원자로 보호계통은 100만 개가 넘는 부품 중 어느 하나라도 경미한 이상 증세를 보이면 즉각 원자로를 멈춰 핵분열을 중단시킨다. 국내 원전 가동 후 사고로 인한 정지는 한 건도 없고 대부분 사소한 고장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월성 1호기를 건설하던 1970년대 말에 입사했다는 한 간부는 1호기를 성물(聖物)처럼 여겼다. “1호기는 어렵던 시절에 차관을 들여와 만들었다. 청계천 봉제공장 여공들이 밤새 미싱을 돌려 만든 옷가지를 두세 컨테이너씩 수출해 번 돈으로 주먹만 한 원전 부품 한 개를 사왔다. 베트남 파병 용사들의 피땀도 서려 있다. 그런 선배 세대의 희생을 한시도 잊지 않고 30년을 내 몸처럼 닦고 죄고 기름칠했는데 나이 들었다고 무작정 폐기하라니….”
문, 안 후보는 현재 2.7%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 20∼30%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전의 3∼4배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원가는 차치하고 당장 지리적 사회적 여건이 받쳐주질 못한다. 수력발전 댐을 만들 만큼 낙차가 큰 지형이 드물고, 일조량과 바람이 넉넉지 않아 태양광과 풍력발전에도 한계가 있다. 수력발전소가 수몰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고 조력발전소는 갯벌을 훼손한다는 반론도 거세다. 신재생에너지 선진국 독일은 부족한 전기를 이웃 프랑스에서 수입한다. 그런 독일이 한국의 원전 논란을 보며 ‘북한에 원전을 짓고 남한에 전기를 팔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신재생에너지가 실용화될 때까지 원전과의 동거는 불가피하다. 차선책으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사회-재벌 대타협론’을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재벌의 경영권 방어장치를 허용하는 대신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미래형 신산업 투자, 복지국가 건설 협조 같은 대가를 받아내자는 게 요지다. 원전과도 이런 대타협이 가능할 듯하다.
필수 요건은 안전이다. 후쿠시마 쇼크 이후 30건 넘는 안전조치를 추가했다고 하나 국민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몇십만분의 1에 불과한 사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가령 월성 원전에 200억 원을 들여 설치 중인 격납건물 여과배기설비는 “발전소가 폐쇄될 때까지 한 번도 사용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국민 불안 해소비용’으로 감수할 도리밖에 없다. 1호기의 운명도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주민의 동의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투자도 독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운용사 이전에 발전 회사다. 언젠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로 장단기 계획을 세우고 이 분야의 연구개발을 선도해야 한다. ―경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