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월계동→상계동 폐수영장→노원구청 주차장→경주 방사성폐기물처리장으로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의 신상명세가 아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노원구청 뒤 공영주차장에 마련된 임시보관 건물에 1년째 모습을 숨기고 있는 폐아스팔트 얘기다. 아스팔트는 지난해 10월까진 월계동 주택가 도로에 깔려 있었다. 한 시민이 아스팔트에서 방사능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11월 주민들의 반발로 도로에서 뜯겨났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당시 “인근 주민들이 받은 연간 방사선량은 안전 범위 안”이라고 발표했지만 주민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대책위원회에 ‘방사능 탓에 병에 걸렸다’는 청원서를 낸 주민이 몰렸다. 주부 김모 씨(48·여)는 “월계동에서 살면서 3차례나 자연 유산했다”며 “방사능 탓이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광고 로드중
6일 기자가 만난 월계동 주민들 가운데서도 “방사능의 위력이 과대평가됐던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강모 씨(69)는 “땅값이 떨어질까 봐 들고일어났지만 실제로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당국의 조사 결과와 별개로 폐아스팔트는 ‘괴물’ 취급을 받으며 떠돌아다녔다. 노원구는 뜯어낸 아스팔트를 상계동 마들근린공원의 폐수영장으로 옮겼지만 열흘도 지나지 않아 구청 뒤 공영주차장으로 옮겨놔야 했다. 공원 인근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탓이다.
이번엔 구청 주변 주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상계동 주민들은 “월계동 주민 살리자고 상계동 주민은 죽이는 것이냐”며 항의했다. 노원구는 폐아스팔트를 여러 겹으로 밀봉하고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관하겠다”며 주민들을 달랬다.
해결된 듯 보였던 갈등은 폐아스팔트를 어디서 분류할지를 놓고 다시 불거졌다. 폐아스팔트를 일반폐기물과 10Bq(베크렐·방사성 물질의 방사능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이상의 중저준위 폐기물로 분류하는 작업엔 한 달 이상이 걸린다.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분류작업 장소를 내주려는 곳이 없었다. 인적 드문 전방 군부대를 내달라는 요청에 국방부도 난색을 표했다. 어렵사리 공릉동 한국전력 중앙연수원 내 원자력연구소를 분류 장소로 낙점했지만 이 역시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결국 폐아스팔트는 임시보관 건물에 그대로 남겨졌다.
광고 로드중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