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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박중현]경제자유구역에 자유를 허용하라

입력 | 2012-11-06 03:00:00


박중현 경제부 차장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자유구역의 최초 설계자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의 전신)의 핵심인 경제정책국장으로 경제자유구역과 이 지역 내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런 박 회장이 지금까지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다. 의료부문 규제개혁안을 처음 만들 때 ‘영리(營利)’라는 말을 쓴 점이다. “이 용어 때문에 너무 많은 오해가 생겼습니다. 의료법에 나오는 ‘비영리 법인’의 반대 의미로 쓴 영리병원이라는 말로 인해 논의의 초점이 엉뚱한 데로 흘러가 버린 겁니다.”

의료법이 의사 개인이나 ‘비영리 법인’만 의료 행위를 하도록 규정한 의미는 돈을 벌지 말라는 게 아니다. 개인이 세운 의원, 병원은 당연히 열심히 영리활동을 한다. 대학병원들도 자선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과잉 진료라는 비판까지 받아 가며 번 돈을 대학 내 다른 용도 등으로 쓸 뿐이다. 다만 비영리 법인이어서 일반 회사처럼 투자를 받거나 배당을 하지 못한다. 규모를 키우거나 연구시설을 늘리려면 출연, 기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투자가 안 되다 보니 최고의 의사에게 걸맞은 보상이나 연구 환경도 제공하지 못했다. 수십 년간 대한민국 최고 인재를 싹쓸이하고도 한국의 의료 수준이 선진국에 못 미치는 이유다. 10년 전 경제자유구역 입안자들은 이곳에 투자가 가능한 병원을 세워 한국 의료산업의 수준을 끌어올리려 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명확했다. 당시에 이미 한국경제를 이끌던 제조업이 더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을 것이란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청년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할 길은 의료, 교육, 법률 등 고급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뿐이라고 이들은 확신했다.

당시 서비스업 규제 완화 실무 총괄을 맡았던 김익주 재정부 무역협정국내대책본부장(당시 산업경제과장)은 “한정된 지역의 규제를 풀어 서비스업이 얼마나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인천 경제자유구역 내 송도에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이 유치되면서 영리병원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당장 내년에 세계은행(WB)에 맞먹는 국제기구가 들어서는데 외국인을 진료할 병원이 없어 정부는 10년 만에 서둘러 필요한 제도 정비를 끝냈다.

일부 시민단체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리병원이 하나라도 허용되면 우수한 의사들이 몰리고, 외국인뿐 아니라 국내 고소득층이 이용하면서 건강보험 체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논리는 복잡해도 속내는 ‘내 눈 앞에서 부자들이 고급 의료를 이용하는 걸 봐 줄 수 없다’는 걸로 읽힌다. 세계 수준의 병원이 들어섰을 때 찾아올 중국 등 해외의 의료관광객, 한국 고소득층이 해외 의료기관에 나가서 쓰는 막대한 비용의 절약, 그 덕분에 생기는 일자리 등은 이들의 안중에 없다.

기막힌 것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캠프가 덩달아 영리병원을 반대한 것이다. 대통령이 돼서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겠다면서 영리병원 반대론자의 표를 의식해 질 좋은 수천, 수만 개의 청년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이런 주장이 먹혀드는 한 한국의 경제자유구역에 경제적 자유는 없다. 작은 자유도 쟁취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경제적 자유가 불러올 기회를 시험하려 만든 경제자유구역에 단 하나의 자유를 허용할 용기가 없어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내던지는 무책임한 세대가 될 것인가.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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