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철학/신승철 지음/265쪽·1만5000원·동녘◇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김용범 지음·김윤아 그림/267쪽·1만4800원·채륜서
동녘 제공
○ 발효에서 ‘변용’, 음식궁합에서 ‘이질생성’을
17세기에 등장한 잡채는 광해군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광해군은 밥상에 잡채가 없으면 수저를 들지 않았고, 잡채를 만들어 진상한 이충이라는 사람에게 좌의정 벼슬까지 내렸다. 임금까지 푹 빠지게 만든 잡채의 매력은 여러 가지 채소가 당면과 만나 각각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색다른 맛을 내는 데 있다. ‘식탁 위의 철학’을 쓴 신승철 철학박사는 잡채를 ‘다양성 생산의 음식’으로 정의한다. 이어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와 철학자 질 들뢰즈의 ‘차이’에 대한 철학을 소개하며 차이와 다양성이 차별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질서의 문제를 지적한다. 차이와 다양성 존중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 사회는 잡채만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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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접하는 음식을 통해 철학적 영감을 얻는 저자의 발상이 신선하다. 하지만 다양한 철학적 개념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사유를 찾는 독자라면 애피타이저를 먹고 한껏 식욕을 자극한 상태에서 정작 메인 메뉴 없이 식사를 마친 듯 충족되지 않은 기분이 들 수 있다. 때로는 과도하다 싶은 연상도 보인다. 예를 들어 소주의 투명함을 보며 사회에서 투명인간처럼 치부되는 장애인, 노인 등을 떠올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철학을 논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 문화적 담론의 매개였던 ‘검은 유혹’
채륜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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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불꽃같은 31년을 살다 간 독문학자 전혜린은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내가 만일 다시 구라파에 간다면 나는 우선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다. 1950년대의 고독한 독일 뮌헨 유학 시절에 그는 카페에서 커피 맛을 음미하며 예술과 철학의 담론을 나눴다. 그를 비롯해 전후 독일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쓴 커피로 식사를 대신하며 남루한 낭만을 즐겼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