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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한국 연극계 대표 원로배우 장민호 씨 별세

입력 | 2012-11-03 03:00:00

영원한 현역 ‘파우스트 장’ 괴테 곁으로…




고 장민호 씨는 세월이 흐를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배우였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가장 먼저 대사를 외우고 깊이 있는 인물 분석으로 후배 배우들의 모범이 됐다. 동아일보DB

“연극배우라는 건 남는 게 없는 법이지요. 연기라는 게, 커튼콜의 박수갈채가 끝나면 담배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거니까. 60여 년간 연극무대를 지켜오면서 그게 못내 아쉬웠는데, 이렇게 연극의 현장이라 할 극장의 이름으로 남아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다는 게 감개무량합니다.”

지난해 2월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한 국립극단이 서울 용산구 서계동에 새로 극장을 열고 ‘백성희장민호극장’이란 이름을 붙였을 때 고 장민호 씨가 했던 말이다. 국립극단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두 원로배우는 개관작인 ‘3월의 눈’ 주역으로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2일 오랜 동료를 떠나보낸 백성희 씨는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말없이 바라보다 눈물을 흘렸다. “먼저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내 모든 의식이 정지된 것 같았어요. 죽을 것 같더니 눈물이 나더군요. 나도 죽을 것 같았습니다.”

백 씨는 “‘3월의 눈’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때 이미 몸이 좋지 않으셨다.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보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가슴 저미게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연습 때 ‘우리는 연륜 있는 배우답게 연출의 지시가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자, 오래 산 만큼 연극에 보답하자’고 한 말이 떠오른다”고 전했다.

그의 기억 속 고인은 ‘건실한 남자’였다. “배우로서 맡은 배역은 책임지고 소화했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진심으로 아파하는 사람이에요. 허튼짓 하지 않고 배우를 고집하면서 가족을 부양했죠.”

배우 손숙 씨는 “작품에 대해서는 완벽하고 후배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분이셨다. 연극이 인생의 전부였던 분”이라며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고인을 추모했다. 배우 신구, 강부자 씨도 빈소를 찾았다.

2일 별세한 원로 연극배우 장민호 씨의 서울 아산병원 빈소에는 ‘영원한 현역 배우’인 고인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배우 강부자 씨가 조문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왔다가 조선배우학교에 입학한 뒤 이듬해 종교극 ‘모세’로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같은 해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 라디오 전속배우(성우)가 됐고 1950년 국립극단 전신인 극단 신협에 들어갔다. 60여 년간 20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는데, 특히 난해한 괴테의 ‘파우스트’ 주연을 네 차례나 맡아 ‘파우스트 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97년 국립극단이 그의 연기 생활 50주년 기념 공연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파우스트를 골랐다. 그는 “파우스트 역을 평생 네 번씩이나 하는 행운의 사내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평생을 학문에 바쳤으나 지식과 삶의 허망함에 전율하며 새롭게 정염을 불태우는 파우스트. 나 또한 생을 송두리째 던져 넣은 연극 무대에서 파우스트의 그 처절한 마음을 되새겨볼 작정입니다.”

배우로서 그의 진가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높아졌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제일 먼저 대사를 외웠고, 또렷한 발성과 정확한 타이밍, 깊이 있는 인물 분석으로 모범이 됐다. ‘영원한 현역 배우’라는 수식은 그래서 생겼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자신의 배우 인생을 극화한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2001년)의 주연을 맡았고 다시 10년 뒤 역시 자신을 모티브로 삼은 창작극 ‘3월의 눈’에서도 주연을 멋들어지게 소화해 극찬을 받았다. 햄릿의 대사를 원용한 “배우는 시대의 축도(縮圖)이다”와 “연기는 사라짐의 미학이다” 등의 어록을 남겼다.

고인은 연극뿐만 아니라 라디오 성우, TV 탤런트, 영화배우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30년 가까이 성우협회 이사장(1966∼1995년)을 맡았으며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제작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TV문학관’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 출연했다.

“화가는 그림을 남깁니다. 소설가는 책을 남기지요. 다 흔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극은 그렇지 못해요. 현장 예술이기 때문에 지나면 그만입니다. 제 배우 인생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때 그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온 세월이었지요.”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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