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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섭 변호사 “한일회담 데모로 구속된 MB, 내가 신원보증 섰죠”

입력 | 2012-11-03 03:00:00

법조 원로 김인섭 변호사 자서전 ‘추풍령에서∼’ 펴내




“현대 사회의 기본 인프라는 법치주의입니다. 공(公) 사(私) 영역에서 광범위한 법치가 자리 잡지 못한다면 성장 발전의 기반인 민주주의 체제가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설립자인 김인섭 명예 대표변호사(76·사진)가 자서전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나남)를 펴냈다. 책에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판사 변호사 시민운동가로 치열하게 살아온 저자의 인생 역정을 담았다. 부제는 ‘법치주의를 추구했던 한 법조인의 초상’.

그의 법관 생활 18년간은 박정희 대통령의 압축성장 기간과 맞물리고 이후 변호사 생활 22년은 민주화 시절과 겹친다. 그는 “법조인은 판결문으로만 말한다는 전통이 있는데, 한 시대를 살아온 법조인의 회고록도 중요한 현대사 자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에서 김 변호사는 1967년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의 주심판사로서 피고인 이창희(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차남)의 병보석을 불허한 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 회원들을 간첩으로 조작하려 했으나 이 회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일 등 정권의 압박과 회유에 맞섰던 판사 시절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또 1964년 한일회담 반대 데모로 구속된 고려대 재학생 이명박(현 대통령)의 신원보증을 서준 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저자에게 정치 입문을 강권했던 비화도 공개했다.

김 변호사는 1961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이후 18년간 판사로 재직했다. 그는 1977년 부장판사로 승진한 뒤 단독 집무실과 운전사가 딸린 관용차를 제공받고는 스스로 ‘빚꾸러기(빚을 많이 진 사람)’라는 자각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후 1986년 법무법인 태평양을 설립해 국제적인 로펌으로 키워냈다.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실현한다는 그의 굳은 소신은 변치 않았다. 2002년 현역 법조인에서 은퇴한 후에는 법치주의를 내건 시민운동 ‘굿소사이어티’ 활동을 해왔다.

“적어도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압축성장 시대의 변칙적 법 운영을 마감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도 변칙의 잔영이 이곳저곳에서 어른거립니다. 제가 은퇴한 후 법치주의 시민운동을 벌이는 것은 이런 자각 때문입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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