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 현대미술 거장 아니시 카푸르 개인전
인도 출신으로서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아니시 카푸르는 지금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강렬한 색채로 완성된 ‘노랑’(1999년)은 거대한 단색조 회화이면서 안으로 움푹 파인 음의 공간을 가진 조각이기도 하다. 또한 미술품이면서 벽면을 활용한 건축물의 일부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 8주년을 맞아 현대미술의 거장 아니시 카푸르(58)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원색 안료를 사용한 초기작부터 핵심적 작업인 ‘보이드(Void)’ 연작, 73개 스테인리스 스틸 공을 쌓아올린 신작까지 18점을 아우른 자리다. 인도 뭄바이 태생의 작가는 1973년 런던으로 건너가 미술교육을 받은 이래 영국의 대표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에 참여했고 1991년엔 권위 있는 터너상을 수상했다. 올해 런던 올림픽의 기념조형물 ‘궤도’ 역시 그의 작업이다. 미국 시카고에 자리한 거대한 콩알 같은 ‘구름 대문’은 국내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야외조각 작품이다.
전시에선 동서양의 미학과 철학, 현대적 조형언어가 삼위일체를 이룬 작가의 내공이 빛을 발한다. 작품 이해와 상관없이 고요하고 명상적 작품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년 1월 27일까지. 5000∼8000원. 02-2014-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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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니시 카푸르의 ‘동굴’은 그 속에 담긴 어둠의 공간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아래)73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공으로 완성된 대형 조각 ‘큰 나무와 눈’.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녹슨 쇠로 만든 대형 조각 ‘동굴’(2012년)과 더불어 그를 대표하는 ‘보이드’ 시리즈는 물질로 비물질의 세계를 드러낸다. 짙푸른 안료로 만든 3개의 반구와 오목거울 형태의 조각에 담긴 내부의 빈 공간이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다양한 작업에선 반사이미지가 두드러지는데 “내 작업은 거울 자체에 머물지 않고 거울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라며 “오목거울은 끝없는 자기 반복이 일어나는 점에서 관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벽면을 예리한 칼로 베어낸 듯한 ‘도마의 치유’(1989년), 실제 미술관 바닥을 동그랗게 뚫어버린 ‘땅’(1991년), 흰 벽면이 불룩 앞으로 튀어나온 ‘내가 임신했을 때’(1992년) 등은 작품에 대한 관습적 인식을 무너뜨린다.
○ 아름답고 숭고한 창조의 공간
작가는 “작품 속 공간은 어둡고 빈 공간이 아니라 창조의 공간, 시적인 공간”이라며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은 것이 담긴다. 비운다는 것은 곧 채운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음과 양, 존재와 부재, 비움과 채움 등 이질적 요소를 수렴한 그의 작업은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오묘한 융합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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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선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사각의 오목거울이 왜곡된 이미지를 비추는 ‘현기증’엔 어지러운 혼돈의 감각이, 릴케 시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대형 조각 ‘큰 나무와 눈’엔 유동적이고 풍성한 시적 상상력이 살아 숨쉰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