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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현진]FTA 수출상담회를 다녀와서

입력 | 2012-10-29 03:00:00


박현진 뉴욕 특파원

이달 중순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한국과 미국 기업 간의 구매 및 수출 상담회인 ‘글로벌 파트너십 USA 2012’ 행사를 취재했다. 3월 15일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달라진 대미(對美) 수출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KOTRA가 주관해 3년째 열린 이번 행사는 예상대로 문전성시였다. 지난해에 비해 한국과 미국에서 참가한 업체가 각각 50% 가까이 늘었다. 중장비 자동차 농기구 등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미국의 글로벌 제조업체들과 부품을 생산하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한자리에 앉았다. 한미 FTA 덕분에 관세가 사라지면서 좀 더 값싸게 한국 부품을 수입하려는 미국 업체들과 이번 기회에 미국 시장을 제대로 뚫어 보려는 한국 중소기업. 두 나라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자리였다.

FTA 효과를 확인한 것뿐만 아니라 새로 깨달은 것이 많다. 기술력 있는 우리 중소기업들이 내로라하는 미국 업체에 활발히 부품을 수출하고 있을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이날 참여한 54개 미 글로벌 제조업체 가운데 한국과의 거래가 전무한 기업이 40%였다. 세계 1위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할리데이비슨, 북미에서 가장 큰 버스 제조업체인 뉴플라이어 등 업종 대표 기업들이 들어 있었다. 아프리카 남미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정부의 구호가 왠지 어설프게 느껴졌다.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려 있는 신규 시장은 의외로 미국에 있었다.

‘수출입국(輸出立國)’을 기치로 수십 년을 달려온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왜 지금까지 미 대표 제조업체를 뚫지 못했을까. KOTRA 관계자는 “미 기업들은 부품 수입을 위해 여러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를 충족시키는 업체는 의외로 많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 현대 LG 등 한국 대표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 한국 중소기업의 현주소는 여전히 초라했다.

정부에서 산업정책을 담당하다 재야로 나온 한 인사를 현장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서류에서 끝난다. 정작 가능성 있는 중소 벤처기업은 정부 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왜 예산을 엉뚱한 곳에 낭비했느냐’는 감사원 등의 질책이 두렵고 현장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많이 들어 온 얘기지만 이날은 더욱 크게 공감이 갔다.

조만간 치를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들은 중소기업의 표심을 겨냥해 ‘경제민주화’와 ‘상생 경영’을 부르짖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중소기업 대표들은 공허하고 구체성 없는 슬로건으로 들린다고 했다. 현장과 괴리된 중소기업 수출 지원 정책이 계속될 거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들은 오히려 이날 현장에서 동분서주하며 미국 기업과 한 건이라도 더 수출 상담 자리를 성사시키려는 KOTRA 직원들에게 눈물겹도록 감사해했다.

다행히 FTA로 미국 글로벌기업들의 한국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의 헬무트 카인츠 전략구매 대표는 “우리는 가격 경쟁력과 품질을 함께 갖춘 부품업체를 찾아 왔다. 그동안 거래가 없었던 한국 부품업체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스스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겠지만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구호와 슬로건만으론 그 날개를 펼치게 할 수 없다. 현장의 수요를 잘 알고 어디를 어떻게 연결해 줘야 할지 아는 수출 현장 전문가를 키우는 것과 같은 디테일이 필요하다. 한국의 중소기업에 더없는 기회인 FTA 효과를 그냥 날려 버리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시카고에서

박현진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