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노숙소녀 살인’ 30대 재심서 무죄
2007년 5월 14일 오전 5시 반, 경기 수원시의 S고교에서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가출 청소년 김모 양의 시신이 발견됐다. 김 양은 누군가에게 심하게 맞아 숨진 상태였다. 노숙인들을 상대로 탐문을 하던 경찰은 김 양이 발견되기 이틀 전 노숙인 정모 씨와 강모 씨(34) 등 6, 7명이 수원역에서 ‘2만 원을 훔쳐갔다’는 이유로 한 여성 노숙인을 심하게 때렸다는 정보를 얻고 당일 정 씨와 강 씨를 긴급체포했다.
두 사람은 이틀 전 자신들이 때린 여성 노숙인 때문에 조사를 받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정 씨는 “사건 당시 수원역 대합실에서 잠을 잤지만 김 양을 때린 적이 없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목덜미와 정강이를 맞기도 했지만 심한 폭행은 아니어서 정 씨는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미 지문이 나왔고 네 얼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고 겁을 줬다. 동시에 경찰은 강 씨에게 “정 씨가 계속 거짓말을 해서 형사들이 화가 많이 나 있다. 너라도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벌금만 나오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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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강 씨가 벌금 200만 원을 받은 반면 자신은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7년이 선고되자 정 씨는 항소하며 뒤늦게 “경찰이 강압수사를 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5년형으로 형량만 줄었다.
정 씨의 억울함은 경찰이 공범으로 지목한 5명이 잡히며 풀리게 됐다. 이들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강 씨가 “정 씨를 포함해 누구도 김 양을 때린 적이 없다”고 증언한 것. 검찰은 강 씨를 위증죄로 기소했지만 무죄가 선고됐고, 5명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자 대법원은 올해 6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정 씨의 자백을 믿을 수 없고 어떤 CCTV에도 정 씨가 김 양을 범행장소로 데려가는 장면이 찍혀 있지 않다. 또 김 양의 사망 추정시간도 수사기관의 주장보다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다른 노숙인을 때린 부분에 대해서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정 씨는 어수룩한 표정으로 “그럼 다시 형을 살아야 하나요”라고 물었고 재판부는 “이미 형을 살았으니 그럴 필요는 없다. 너무 늦게 무죄가 나와 안타깝다”며 위로했다. 정 씨는 이미 5년형을 만기 복역하고 올해 8월 2일 출소했다.
정 씨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38·사시 45회)는 “수사기관의 실적 욕심에 사회적 약자가 희생된 사건”이라며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 국가 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혼한 어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는 외아들 정 씨는 수원의 한 노숙인 자활센터의 도움을 받아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했던 A 형사는 또 다른 영아유기살해 사건에서도 여성장애인을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이유로 국가인권위로부터 징계 권고 결정을 받았다. 그는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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