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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영화 같은 ‘청부 살해’

입력 | 2012-10-24 03:00:00


‘돈이 들더라도 킬러를 고용한다! 만약 실패하더라도-아내가 열 받아 죽겠지?’ ‘마누라는 남편에게 두 번 기쁨을 준다. 결혼식 날과 장례식 날!’ 박중훈 최진실 주연의 영화 ‘마누라 죽이기’(1994년)의 광고문구는 코믹하고 자극적이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편 봉수는 돈 잘 버는 아내에게 일과 가정의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다. 그 와중에 바람까지 난 봉수는 마누라를 없애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고 전문 킬러를 고용한다. 돈을 벌기 위해 이리저리 뛰지만 실패를 거듭하는 허술한 청부업자를 보면서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당시 포스터는 코미디 영화답게 ‘마누라 제거’를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덤으로 소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같이 월북한 뒤 남편은 간첩교육을 받아 남한에 와서 자수한다.”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가서 밀림 속에 떼놓고 온다.” “어마어마한 가격의 다이아몬드를 선물해 쇼크사 시킨다.” 영화에선 마누라를 죽이려던 남편이 되레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만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그 끝은 비극적 결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

▷돈 잘 버는 아내의 회사를 뺏기 위해 남편이 심부름센터에 돈을 주고 살인 의뢰를 한 사건이 들통 났다. 남편이 운영하던 자동차 렌트 업체를 넘겨받아 야무지게 운영했던 아내는 다달이 2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한데 부부 사이가 벌어지면서 알토란 같은 사업체를 키워낸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남편은 회사를 차지할 생각에 청부 살해를 주문한 것이다. 그가 지불한 살인의 대가는 1억9000만 원. 아내가 죽은 뒤 살인범에게 아내 명의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고 체크카드를 사용하게 했다. 현실의 시나리오가 어설픈 영화보다 더 치밀하다.

▷국내에서도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이 아내를 청부 살해한 사건들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8월에는 50대 남편이 3건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7개월의 준비 끝에 20대의 어린 아내를 청부 살해한 사건이 알려졌다. 몇 년 전에는 보험금 1억 원을 타내려고 내연녀와 짜고 ‘마누라 죽이기’를 4차례나 직접 시도한 30대 남편도 있었다. 보험에 가입한 아내나 남편이 이유 없이 실종되거나 살해되면 경찰 수사의 제1 용의자는 그 보험금을 탈 배우자일 수밖에 없다. 돈에 눈이 어두워지면 다들 바보가 되는 모양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