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철책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다. 옛날엔 무장공비 침투를 막느라 삼엄했지만 이제는 귀순자 월북자 특수부대원만 간혹 넘어오는 정도지 무장공비는 없어졌다. 그게 수십 년 됐다. 북한 입장에서도 굳이 철책을 넘지 않아도 된다. 바다도 있고 제3국도 있고.”
“철책 근무는 초소 간 거리가 멀어 구조적으로 동료끼리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병사들이 실탄 든 총을 들고 서 있는 곳이라 여차하면 쏠 수 있다. 밤에 외지인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가 암구호를 모를 경우 사고가 날 수 있어 상급 부서라도 미리 통보하지 않으면 기습 순찰을 하기 힘든 여건이다.”
철책 근무 경험담들이 더 이어졌다.
“병사들의 긴장감이 많이 사라졌다. 내가 근무할 때에는 전기도 없고 CCTV도 없었지만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됐다.”
“경계 근무만큼 지루하고 진 빠지는 게 없다. 사명감, 정신무장이 중요하다. ‘경계 근무의 과학화’를 한다며 CCTV만 늘리면 뭐 하나, (그걸) 보는 사람이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 아닌가.”
끝자리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한 퇴역 장성이 입을 열었다. 톤이 약간 올라가 있었다.
“군만 그런가. 국정원도 대공(對共) 분야가 무너진 지 오래 아닌가. 요즘처럼 안보관이 흐트러진 시대에 병사들에게만 ‘잘해라’ ‘똑바로 해라’ 기합이나 명령만 갖고는 안 된다.”
현역 장성이 “결국 모병제의 문제”라고 하자 모두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 군대는 동료가 동료를 감시한다. 근무를 태만히 할 경우 바로 급료가 깎이고 진급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 군이 미국처럼 모병제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직업군인에 대한 평가 방식만큼은 더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평가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게 미사일 한두 개 잘 만드는 것보다 중요하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국방 개혁’ 쪽으로 흘렀다.
“이번 일로 철책 근무 병사 수를 늘리자고 하는데 소모적인 게 아닐까. ‘작지만 강한 군대’는 몇몇 귀순자 탈북자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만일의 경우 있을지 모르는 정규전 비정규전 같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다.”
“정치군인이 너무 많다. 요즘 대선후보 캠프의 안보 공약 짜는 사람들 면면을 봐도 80%가 서로 아는 사람들이더라. 무엇보다 군 인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안보와 관련한 인사만큼은 지역이나 정치적 변화에 좌지우지되어선 안 된다. 안보야말로 마지막 보루 아닌가.”
초반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대화가 이어지면서 약간 침울해졌다. 그러나 군인들의 진정한 속내를 느낄 수 있었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