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물질 든 배낭 메고 3중검색 무사통과
14일 오후 1시 반경 위조한 출입증으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들어간 김모 씨가 아무런 제지 없이 18층 복도를 걷는 모습(왼쪽 사진)이 폐쇄회로(CC)TV에 촬영됐다. 김 씨가 불을 지른 1808호 교육정보기획과 사무실에 불에 탄 모니터와 의자, 서류 등이 어질러져 있다(오른쪽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김 씨가 가진 출입증은 얼핏 보기에 정상적인 출입증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소속 기관조차 적혀 있지 않아 근무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허술한 것이었다. 국가 보안이 허술하지 않도록 재점검하겠다는 최근 정부 발표를 무색케 하는 사건이었다.
○ 가볍게 뚫린 정부의 ‘심장’
경찰 2명이 지키고 있는 후문에서 김 씨는 앞주머니에서 가짜 출입증을 꺼내 들어 보이며 통과했다. 후문에서는 2시간마다 의경 2명이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김 씨가 투신한 뒤 후문을 지키고 있던 의경은 “공무원증 소지 여부를 확인한 뒤 출입시키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진과 얼굴, 소속 부처까지 확인하지는 않은 것이다.
후문으로 어렵지 않게 들어온 김 씨는 현관에 설치된 보안검색대도 그냥 지나쳤다. 평일 근무시간에는 경비대원 한 명이 투시기를 이용해 위험물질 반입을 봉쇄하지만 휴일에는 근무자가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이날 김 씨가 출입할 때에도 검색대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김 씨가 메고 있던 검은색 배낭에는 인화성 물질 500mL가 생수통에 담겨 있었지만 정부부처 출입구를 손쉽게 통과한 것이다.
이어 17분경 마지막 출입확인 절차인 로비의 보안게이트(출입증을 대야 열리는 구조)도 김 씨는 어려움 없이 통과했다. 정상적인 절차였다면 지하철 출입구처럼 카드를 찍은 뒤 출입증에 내장된 IC카드로 신원을 확인한 뒤에야 출입이 가능하지만 이날 3개의 출입구와 1개의 화물용 출입구가 설치된 로비 보안게이트 중 한 곳은 열려 있는 채였다. 당시 로비게이트 주변에는 방호근무자가 근무하고 있었지만 김 씨는 이 역시 가짜 출입증을 보여주며 열려 있는 게이트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통과했다. 정부중앙청사 방호 관계자는 “휴일이었기 때문에 보안게이트 관리자가 직원 출입이 원활하도록 한 곳을 열어 놓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정부중앙청사나 산하단체 등 어느 곳에서도 근무한 적이 없었다. 경찰은 “김 씨가 공무원 출입증 모양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에 접속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가짜 출입증 제작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씨의 소지품에서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가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외환위기 직후에 한 은행에서 근무하다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구조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일정한 직업 없이 주식투자를 하거나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최근까지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고 이 때문에 아내와 별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아내는 “남편이 우울증에 걸린 뒤 스스로 공무원 출신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3일 이혼 문제로 아내와 다투다 폭행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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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