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국제부 기자
특히 시라크는 룰라의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곧장 오랜 벗이자 당시 외교장관인 필리프 두스트블라지를 불렀다.
“우리가 퇴임 후에도 지속적으로 가난과 싸울 프로젝트를 구상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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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훈한 미담엔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등장한다. 두스트블라지 전 장관이 정신적 지주로 여기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다. 유니타이드 운영 문제로 고심하던 그에게 ‘마이크로 도네이션(micro-donation)’이란 아이디어를 일러 준 게 클린턴이었다.
마이크로 도네이션은 말 그대로 ‘소액 기부’를 말한다. 자선단체 후원금을 기업이나 부자의 일시적 선행에 기대지 않고 선진국의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세금 일부를 조금씩 모아 충당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유니타이드는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여행객이 프랑스에서 비행기를 탈 때 내는 공항세 가운데 1유로(약 1440원)를 재원으로 확보했다. 클린턴이 창립한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GI)’ 역시 이런 방식으로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마련한다. 그는 이달 초 시사주간지 타임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활동이 세상에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역설한 바 있다.
“정부와 기업, 자선단체는 오랫동안 인류의 질병에 대항해 싸워 왔습니다. 그러나 세 분야를 잇는 혁신적인 협력 관계를 통해 우리는 더 큰 진보를 이뤄 낼 수 있습니다. 이는 각자 별개로 움직여선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엄청난 성취입니다. 그 때문에 함께 일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물꼬를 트는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전직 대통령들의 활동이 현직 행정수반 업무보다 더 숭고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한 국가를 이끄는 막중한 임무를 폄훼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이젠 한국에서도 일선에서 물러난 뒤 아름다운 행보를 걷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잠깐 얘기를 되돌리자면, 쿠퍼의 칼럼 제목은 ‘조용히 지구를 바꾸는 법’이다. 세간의 이목이 시들해져도 묵묵히 인류에 기여하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희망적이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마다 거의 매번 시끄러웠던 이 땅에선 너무 먼 얘기일까. ‘29만 원 쇼’는 이제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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