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동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위원장
내가 공사관을 찾아간 것은 1990년대 초 어느 날이다. 로건 서클(Logan Circle)에 공사관 건물이 있었다. 로건 서클 일대의 건축물은 거의 1875년 이후 1900년 사이에 세워진 것들이다.
이상재의 기록에 의하면 워싱턴 시 공관은 ‘업비태호텔에서 워싱턴시 제15가 1513번지 피셔옥(皮瑞屋)을 빌려 19일 시무식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체면도 서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서 “1891년 새로 구입한 공관은 붉은 벽돌조의 3층 양옥으로 남향의 신축이었으며 응접실·집무실·침실·식당·욕간·변소·창고까지 구비하였는데, 최상층의 전면에는 깃대를 세우고 태극기를 높이 게양했다”고 하고 있다. 이 공사관은 층고가 높고 널찍한 방이 9개나 있고 지하실에 또 다른 방들이 있었으며, 공사관 직원 및 그 가족은 2층과 3층에 각각 기거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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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1891년 11월 28일 2만5000달러에 이 건물을 샀다. 당시 조선의 재정 형편으로는 엄청난 금액이다. 매매 문서에는 브라운이라는 사람 소유였다. 구입한 사람은 ‘이씨조선 국왕(King of Chosun Ye)’으로 되어 있다. 즉, 대한제국 고종 황제였다.
그러나 1905년 12월 16일 공사관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문을 닫고 말았다. 일제의 압력에 의해서였다. 그 후 이 건물은 경술국치 직전인 1910년 6월 29일 고종과 당시 일본인 궁내부 차관, 그리고 조민희(마지막 주미 특명전권공사)가 날인해 일본에 넘겨졌다. 매수인은 주미 일본대사 우치다(內田康哉)였다. 그때 양도 가격은 겨우 5달러였다.
그 후 미국인에게 소유권이 넘어 갔다. 1972년 5월 이 빅토리아식 3층 건물은 워싱턴시위원회와 미술위원회가 역사적 기념물로 평가해 미국문화재로 지정했다.
우리 정부가 일본에 빼앗긴 근대사 건물을 되찾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지금 독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의 역사 문제는 당시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이 일에 앞장선 문화재청과 젊은 파워 엘리트들은 한 세기 전의 일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우리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국외의 주요 역사기념물을 조사하고 보존하여 활용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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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동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