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아버지, 아버지를 버리다니요...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2년 전이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했습니다. 어느 날 의사가 아버지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서 편안한 마무리를 해 드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물어 왔습니다. 알았다고 대답하고선 그 길로 포천에서 작은마리아 수녀회가 운영하는 말기 환자 병동으로 달려갔습니다. 한번 둘러보고 다시 보고 해서 모두 네 차례나 사전 답사를 했습니다. 그때 그곳 책임자인 카리타스 수녀가 저한테 그랬어요. 미리 답사해서 조사한 사람치고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자는 없더라고요. 그 말을 들을 때 마음이 따끔했어요. 그런데 그 병동의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말기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 이런 곳이면 괜찮겠다’ 싶어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렸지요.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었습니다. 본래 부자 사이란게 좀 그렇잖아요. 아버지가 동의하시는 줄 알고 포천으로 모시고 가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의 시선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눈이 내게 말했습니다. ‘나, 그냥 이렇게 가는 거야? 죽으러 가는 거냐고?’ 하고 말입니다. 가슴이 덜컥했지만 못 본 체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선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마침내는 ‘너, 정말 날 버리려고 그러는 거지’라고 한마디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들들이 그런 상황에 부닥쳤다면 누구나 가슴이 미어 터졌을 것입니다. 화도 나고요. 그렇게도 아들의 마음을 몰라주다니.”
내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중견 배우의 이력을 추적한 것은 카리타스 수녀를 통해서였다. 2년 전 늦가을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된 ‘죽이는 수녀 이야기’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연극이 화제의 인물로 등장한 아들 박용범 씨가 제작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죽음의 문제를 무대에 올려놓고 객석에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아버지의 그 시선이 되살아나서였다. 내가 공연장에 갔을 때 그는 배우로 분장해 말기 암 환자의 아들로 무대에 섰었다. 배우이자 제작자이며 좋은 죽음의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였다. 연극은 그해 벌써 3차 공연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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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중환자실이라면 진절머리를 냈어요. 거기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호스피스 병동에 모시고 가려 했더니 그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거죠. 병동에 도착한 첫날은 시무룩하시더니 그 다음 날부터는 표정이 달라졌어요. 수녀님들 간호사 간병인 봉사자들이 정말 잘해 주니까 얼굴이 환해졌어요. 일류 호텔 주방장을 지낸 아버지는 거기서 병원 관계자들에게 요리 비법을 가르쳐 주면서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지내다 정말 편안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연극 ‘죽이는 수녀 이야기’는 그런 장면을 담았어요.”
최철주 칼럼니스트
“그 뒤 아버지가 말기 암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투병 기간 중에는 연극도 장사도 모두 집어치웠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그동안 고생한 엄마와 함께 동해로 서해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가장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아버지였지만 죽음에 직면한 당신을 보면서 내가 연극을 통해 무엇을 관객에 전달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배고픈 연극인이지만 호스피스 봉사, 사별 가족 모임을 통해 사랑을 배웠습니다. 내 연극을 본 한 노부부가 정답게 손을 잡고 눈 내리는 밤거리로 사라지는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그는 11월과 12월 인천 부평과 강원 춘천시 등지의 지방 공연을 통해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시 던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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