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5일천하’로 끝난 원전제로 비전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에서 원자력의 가공할 위험성을 지켜본 일부 국가는 원자력 정책을 수정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스위스다. 지난해 5월 2034년까지 순차적으로 폐로 방침을 발표했고 이어 독일이 원전 완전폐지 법안을 의결했다. 이탈리아는 국민투표로 원전 신설 금지를 통과시켰다. 물론 꿈쩍도 않는 나라도 있다. 프랑스에서 좌우파 간 단결이 가장 잘되는 이슈가 바로 원자력이다. 미국의 정책에도 변화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일본의 탈핵 비전에 세계 원자력업계가 요동친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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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기 가운데 지금처럼 2기만 가동할 경우 2013년도 전력 생산을 위한 화석연료 비용은 6조8000억 엔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500조 엔이다. 전력요금 상승에 따른 가계부담 증가와 산업경쟁력 위축은 그렇지 않아도 침체의 늪에 빠진 일본 경제를 회복 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랐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원전 제로 달성 시 일본 GDP는 7% 감소가 예상된다. 원전을 15%로 유지해도 현재(2010년) kWh당 17엔인 전력요금은 32∼34엔으로 배가량 오르고 원전 제로를 달성할 경우 이는 2배 이상 폭등하리란 전망이 나온다. 지금도 비싼 전력요금 때문에 일본산업의 해외 탈출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공장을 돌리지 말라는 말이냐”는 재계의 비명이 엄살은 아니다.
일본의 또 다른 고민은 원자력을 줄이면 화석연료 의존도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온실가스 의무감축 국가로 2012년 말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6% 감축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석탄 석유보다는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을 늘려야 하는데 일본이 수입량을 늘릴 경우 전 세계 LNG 가격이 상승해 세계 경제까지 타격을 입는다. 여기에다 원전산업의 위축을 우려한 미국과 프랑스의 반발까지 겹쳐 민주당 정부는 백기를 들었다.
전력요금 뛰고 산업경쟁력 약화
최근 방한한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 무라카미 도모코 연구원은 “일본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15∼25%의 원자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말대로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 국가로 방사능이라면 몸서리를 치는 일본이 초유의 원전사고를 겪고도 원자력을 버리지 못했다. 탈핵이 단순한 에너지 전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국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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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