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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이덕환]교실에 꼭 살려둬야 할 진화론

입력 | 2012-09-12 03:00:00


이덕환 서강대 교수·기초과학학회연합체 회장

진화론은 현대 과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이론의 하나로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학생 모두에게 반드시 가르쳐야만 한다. 이는 9월 5일 과학기술계의 석학 단체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기초과학학회연합체와 함께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의 진화론에 대한 6건의 청원을 검토한 후에 내린 결론이다.

진화론은 생물종의 다양성을 설명해 주는 현대 과학 이론이다. 세대를 이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무작위적 변이가 자연선택을 통해 다양한 생물종의 분화로 이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분화를 거듭한 결과 현재와 같은 생물종 다양성이 나타나게 되었고, 진화의 과정은 복잡한 관목형 ‘생명의 나무’로 정리된다. 다양한 화석 기록과 진화발생학적 증거를 통해 과학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진화론은 생명 탄생의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그동안 진화론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신성한 신(神)의 영역으로 여기던 생명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혁명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종교적 교리와 충돌하기도 했고,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되기도 했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황당한 주장이 곧 진화론이라고 잘못 인식되는 경우도 있었고, 과학적 검증 과정에서 의도적 조작이나 오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진화론은 분명한 현대 과학 이론으로 자리를 잡았다.

진화론이 종교적 신념과 쉽게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엄격한 성서주의적 시각에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일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처럼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나라에서 특정 종교적 신념을 과학 교과서에 반영시키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

과학 교과서에 모든 종교의 생명관을 소개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더욱이 기독교 전체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로마 교황청은 진화론이 가톨릭 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밝혀 왔다. 자신들의 정체를 애써 감추면서 반증(反證)이 불가능한 종교적 신념을 마치 과학적 반론인 것처럼 포장해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성실한 신앙인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진화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다. 올 7월 한국 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45%가 진화론을 인정하지만, 성경의 창세기에 바탕을 둔 창조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무려 32%나 된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서로 대립되는 과학 이론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 사회가 진화론에 대한 논란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동안 진화론의 교육과 홍보에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던 과학계의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진화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유도하려는 노력만으로는 진화론의 과학적 의미와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시켜 줄 수 없다. 사실 진화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과학 교과서에서는 20세기 후반에 정립된 현대 과학과 첨단 기술에 대한 내용이 턱없이 부실하다. 물리 교과서에서 반도체를 찾을 수 없다. 지나치게 개념 교육에 집착해 온 과학 교육을 현대 과학적 세계관과 문명관을 소개하는 진짜 ‘융합형 과학’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번 진화론 논란을 통해 과학 교과서의 진화론을 다듬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는 했지만 우리 과학계가 늦게라도 과학 교육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도 다행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과학과 종교가 서로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상생의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기초과학학회연합체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