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리소설 걸작선 1, 2/김내성 외 지음1권 744쪽·2권 740쪽·각 권 1만7000원·한스미디어
200자 원고지 5000장이 넘는 ‘백과사전’ 같은 선집의 서두를 장식한 것은 김내성의 ‘가상범인’. 1932년 일본 잡지 ‘프로필’에 실린 ‘탐정 소설가의 살인’을 개작해 1937년 다시 펴낸 것이다. 김내성 작품의 주인공인 탐정 유불란이 처음 등장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추리소설은 어떨까’라는 호기심에서 펼쳐본 이 소설을 읽다보면 여러 번 감탄하게 된다. 최근 추리소설 못지않은 치밀함과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두뇌게임까지. 마치 현대 작가가 당시 시대를 배경으로 쓴 추리소설 같다.
한국추리작가협회장을 지내고 부산에서 추리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종은 또 어떤가. 1970, 80년대 대표 추리작가인 그의 대표작인 ‘회색의 벼랑’은 호텔에서 자살한 한 의문의 여성의 사인을 쫓아가는 한 신문사 홍콩 특파원의 취재기를 속도감 있게 전하고 있다. 짜임새는 다소 헐겁지만 남북한 스파이 얘기를 홍콩을 배경으로 펼쳐놓은 것이 한 편의 박진감 넘치는 스파이 영화를 보는 듯 스케일이 크다.
MBC 인기 형사드라마 ‘수사반장’ 극본을 7년간 썼던 김남의 ‘여자는 한 번 승부한다’도 눈에 띈다. 한 여성의 피살 사건을 둘러싼 부부의 음모와 배신을 그렸는데, 깔끔하고 강렬한 반전의 뒷맛이 매력적이다. 한국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현재훈의 ‘절벽’, 1965년 발표한 한국 최초의 장편 공상과학(SF) 소설인 ‘완전사회’의 문윤성이 쓴 ‘덴버에서 생긴 일’ 등 추리소설 팬이라면 입맛을 다실 만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한국 추리소설은 문단에서 장르 문학으로 평가절하돼 왔고, 추리소설 시장에서도 일본이나 미국 소설에 비해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에게도 수준급 추리 작가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국 추리물의 ‘매콤한 반전’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