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시절이 하수상하니 엄마가 보호자를 자처했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통학했다. 학원에 갈 때나, 밤늦게 귀가할 때도 엄마는 늘 곁에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아이 신변이 안전하니 그것으로 위안이 됐다.
언제부턴가 아이의 표정이 이상했다. 이유를 알고 난 부모는 경악했다. 임신이라니! 아이를 홀로 둔 적이 없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은가. 아이를 추궁했다. 이실직고에 엄마는 넋이 나갔다. 새벽에 남자친구와 아파트 옥상에서 성(性)관계를 가졌단다.
여자화장실 입구에서 학생 3명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점심시간도 다 끝나가는데…. 교사가 의아해하며 다가갔다. 이유를 물었더니 학생들은 “저기, 저기”만 반복했다. 교사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한 칸에서 민망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녀 학생이 성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시퍼런 대낮에 학교 화장실에서 말이다. 교사는 까마득하게 현기증을 느꼈단다.
며칠 전 필자가 들은 이야기다. 두 사건 모두 최근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 했다. 학교나 부모 모두 쉬쉬하지만 그 동네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일찍 성에 눈을 뜬다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전한 사람은 “그 아이들, 성에 대해 너무 몰라요”라며 혀를 쯧쯧 찼다.
‘이 놈의 환경’ 탓이다. 성인광고가 인터넷 공간에 넘친다. 더 노골적인 성인물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러니 못된 어른 흉내를 내며 음습한 성으로 빠져드는 게 아닌가.
반면 성이 건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드물다.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 중 그 어디도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똑 부러진 프로그램 하나 없는 셈이다.
얼마 전 복지부는 사후피임약을 의사의 처방을 받고 구입하도록 한 현 제도를 유지키로 했다. 종교계 반발 때문이라지만, 미성년자의 약품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고 한다. 성에 무지(無知)한 아이들이 사후피임약을 ‘관계 후 먹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만병통치약’쯤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기자만 모르는 것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떤가. 16세의 한 소녀는 알몸 사진을 보내라는 채팅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 소녀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이 소녀는 현재 성폭행 피해자 시설에 머물고 있다.
연일 반인륜적인 성폭행 사건이 터지고 있다. 화학적 거세와 사형제도 부활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뭔가 빠진 느낌이다. 어른들이 약장사처럼 “애들은 가라”만 외치는 건 아닌가 싶다. 꼭꼭 감추니 탈이 나는 것이다. 아이들도 성을 제대로 배울 권리가 있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