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문화부 차장
그런데 휴가지에서 돌아온 후 나흘 만에 비극적인 소식을 들었다. 아쿠아플라넷 제주에 전시돼 있던 고래상어 중 한 마리가 폐사했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의 최후 모습을 본 듯 한동안 마음이 허전했다. 아이들도 휴대전화로 직접 찍은 고래상어의 사진을 보며 이 소식을 믿을 수 없어 했다.
‘상냥한 거인’으로 불리는 고래상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데다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도 인기가 높다. 케냐에서는 ‘신이 고래상어의 등에 실링 동전을 뿌려 놓은 것 같다’는 의미에서 ‘파파실링기’라고 부르고,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등에 별이 가득 찬 듯이 보인다’는 뜻에서 ‘마로킨타나’(많은 별)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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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상어를 놓아주는 일을 놓고 일각에서는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다. 고래상어가 다시 연안에서 그물에 걸려 죽을 수 있으니 수족관이 더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돈을 벌기 위한 인간의 욕심일 뿐이다.
애당초 계절에 따라 태평양, 인도양 등을 오가며 수천 km를 이동하고, 심해에서 1000m 깊이까지 잠수하는 고래상어를 수족관에 가둔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었다. 아쿠아플라넷이 ‘동양 최대의 수족관’이라고 해도 가로 23m, 높이 8.5m의 수조는 최대 18m까지 자라는 고래상어에겐 1평도 안 되는 좁은 감방일 뿐이다.
실제로 아쿠아플라넷에서 봤던 고래상어는 불과 1, 2분이면 한바퀴 돌아와 지친 눈빛을 관람객들과 마주쳤다. 잠수부에게 한 줌의 먹이를 얻기 위해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 대양을 휘젓던 위대한 고래상어는 어쩌다 삶의 고해에서 꼼짝 못하는 샐러리맨 같은 신세가 돼 버렸을까.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고래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은 깊은 바다에서 섬처럼 떠다니는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동해바다’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던 것은, 그곳에 작고 예쁜 고래 한 마리가 살고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었다. 영화 ‘그랑블루’가 감동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돌고래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지던 주인공의 미소 때문이었다. 고래는 역시 바다에 있어야 고래다. 수족관에 갇힌 고래는 더는 꿈을 꾸게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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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