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속국’에서 ‘에너지 한국’으로
19세기 말 대한제국이 소유했던 미국 워싱턴의 주미 공사관 건물을 우리 정부가 다시 매입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이 역시 조선 말기의 서글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청나라는 우리가 1888년 미국에 공사를 파견하려 하자 발목을 잡고 나섰다. 그들은 세 가지 원칙을 요구했다. 조선 공사가 미국에 가면 반드시 청나라 공사와 함께 미국 대통령을 만날 것, 연회석상에서 조선 공사가 청나라 공사보다 앞자리나 상석에 앉지 말 것,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청나라 공사와 먼저 상의하라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묻어두고 싶은 역사를 새삼 꺼낸 것은 그때와는 너무도 달라진 한국의 위상과 비교하고 싶어서다.
지난해 봄 대만을 방문했을 때 수도 타이베이의 한 공연장 앞에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공연을 보기 위해 청소년 팬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2010년 11월 광저우 아시아경기 때 대만의 여자 태권도 선수 양수쥔이 한국계 심판에 의해 실격패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대만에 반한(反韓) 정서가 확산된 직후였다. 한국산 라면을 발로 부수고 태극기를 불태우는 시위가 벌어졌다. ‘한류 열풍’과 ‘반한 감정’이 공존하는 배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 대만 인사가 궁금증을 풀어줬다. 그는 “반한 감정 중에는 대만보다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뒤졌던 한국이 대만을 추월한 것에 대한 경쟁 심리도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新부국강병 이끌 후보 안 보이니
같은 시선에서 보면 중국 내부에서 “한국은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것도, 우리나라가 강릉단오제를 세계무형유산으로 등록하자 중국 누리꾼이 “한국이 중국의 단오절을 빼앗아 갔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강릉단오제의 경우 단오절 자체가 아니라 강릉에 전해오는 단오절 축제를 세계유산에 등록한 것인데도 중국인들은 과민 반응을 보였다. 과거 역사에 대한 중국의 우월감이 한국에 대한 견제 심리와 함께 작동한 것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가해자였던 일본의 정치인들이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놓고 선진강국의 체통을 벗어던진 채 말을 뒤집고 있는 것도 일본의 침체와 한국의 변화에 대한 복잡한 감정의 산물로 읽을 수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과 중국의 빠른 성장에 대한 일본의 불안감이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위상이 더 높아진다면 경쟁 상대로서 강한 견제는 물론이고 문화적, 역사적 측면에서도 예상치 못한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그 때 보다는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닥쳐올 파도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올해 말 뽑힐 새로운 대통령은 그만한 리더십과 혜안을 갖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대통령 후보 중에는 대한민국의 부국강병에 대해 절실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