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평결, 韓판결과 정반대 왜
“소비자들이 단순히 외관만 보고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운영체제, 성능, 상표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하기 때문에 혼동할 가능성이 없다.”(서울중앙지법 판결문)
한미 양국 법원은 제품의 외관 디자인의 특허 권리를 얼마나 인정해줄 것인가에서 견해차를 드러냈다. 이 때문에 하루 차이로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나온 삼성 대 애플의 특허권 침해 소송 판결(미국은 평결)에서 두 회사의 희비가 엇갈렸다.
○ 디자인 특허 인정 범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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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애플 변호사 희비 삼성전자 측 변호사인 케빈 존슨 변호사(왼쪽)가 24일(현지 시간) 굳은 표정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북부지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애플 측 변호사인 제이슨 바트릿 변호사(오른쪽)는 미소를 머금은 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새너제이=AP·EPA 연합뉴스
미국 배심원단은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형태에 △이를 둘러싼 테두리가 있고 △모서리가 둥근 네모 형태의 아이콘이 배열된 애플의 디자인 특허를 모두 인정했다. 이를 포함한 디자인을 베낀 삼성전자가 애플에 실질적 피해를 줬다는 결론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애플의 디자인도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소니의 디자인을 모방한 것”이라는 방어 논리를 폈지만 결국 인정되지 않았다.
반면 한국 법원은 미국만큼 디자인 특허 권리를 많이 인정하지 않았다. 아이폰이 새롭게 도입한 디자인의 특허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법원은 아이폰 디자인 특허 가운데 과거 소니나 LG전자의 스마트폰에서 이미 채택하고 있던 부분에 대한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이폰과 갤럭시S의 디자인이 비슷하다는 것만으로 특허 침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에 사용된 전화 아이콘과 책넘김 디자인 등이 애플의 디자인을 침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디자인의 창작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특허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상이한 결과가 나온 것은 양국 재판방식의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판사가 여러 전문가의 증언을 듣고 자료를 보며 판결을 내리는 한국 법원과 달리 미국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배심원들의 판단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평결을 내린 배심원단 가운데 공학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배심원단장인 벨빈 호건 씨를 포함해 3명뿐이다. 사실상 정보기술(IT) 문외한인 나머지 6명의 배심원은 ‘감성적’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평결에 대해 “미국 특허시스템의 취약성을 테이블에 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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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의 통신 특허 하나도 인정 안 해
배심원단이 삼성전자의 통신 특허를 하나도 인정하지 않은 것도 논란거리다. 한국 법원은 애플이 5건의 삼성전자 통신 표준특허 가운데 2건을 침해했다고 판단했지만, 미국 배심원단은 5건 모두 침해 사실이 없다고 평결했다.
두 나라에서 정반대의 판단이 나온 것은 삼성의 통신 표준특허에 대해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항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프랜드란 누구나 따라야 하는 표준에 속하는 특허는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으로 모든 사업자에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법원은 프랜드 선언을 했다고 해서 삼성이 애플의 기술사용 금지 처분 자체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애플 제품의 판매 금지를 명령했다.
하지만 미국 배심원들은 프랜드 선언을 한 삼성이 애플의 특허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다고 봤다. 일부 삼성 특허를 인정한 경우에도 부품 업체가 사용 허락을 받고 생산한 부품을 이용했기 때문에 애플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른바 ‘특허 소진’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배심원들은 삼성이 요구한 손해배상 청구액 4억2100만 달러 중 단 한 푼도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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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