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중동학
아사드 가문 권력 42년만에 균열
군사개입 없이 쿠데타나 내부 갈등을 통한 시리아 정권 붕괴를 최상의 시나리오로 간주해 왔던 서구로서는 매우 희망적인 조짐이다. 더욱이 21일 러시아를 방문한 카드리 자밀 시리아 부총리는 “바샤르 대통령의 퇴진이라는 조건만 내걸지 않는다면 차기 정부 구성에 대한 협상이 가능하다”면서도 일단 협상 테이블이 열리면 퇴임 문제까지도 논의할 수 있다고 물러섰다. 시리아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실제적인 기대가 높아진 분위기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사태 해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첫째, 시리아 사태는 역사적 원한과 왜곡된 권력 배분을 둘러싸고 종파 간 부족 간에 통제 불능의 무차별 복수전으로 치닫고 있다. 시리아의 혼미는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비무장 민주투쟁이라기보다는 내란적 무장봉기로 시작되었다. 시아파 소수종파인 12%의 알라위파가 74%에 달하는 정통 수니파 국민들을 억압하면서, 알라위파가 모든 요직과 석유 이권은 물론이고 사회적 자본을 독점해 온 상황이다.
둘째, 시리아 사태는 이미 신냉전 구도를 떠올리는 국제전의 양상으로 돌변했다. 러시아, 중국은 물론이고 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 이웃 시아파 정권들이 바샤르 정권을 지지하고, 서구와 수니파 강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카타르 등은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시리아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전통적인 반미 사회주의 국가였던 이집트, 알제리, 리비아, 이라크가 차례로 친서방으로 돌아서면서 시리아는 중동에서 사실상 러시아의 유일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최근 걸프 만에 주둔하는 미 5함대에 맞서 재빨리 시리아 항구에 러시아 군함을 파견하면서 미국의 독점적 중동정책을 견제하고 있다. 시리아를 발판으로 중국의 도움을 받아 중동에서 새로운 냉전구도를 획책하려는 상황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시리아 부총리와의 면담 뒤에 “시리아 정부의 조치는 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현 정권을 압박하는 것도 시리아를 잃기보다는 한층 전향적으로 변화된 시리아를 통해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종파간 복수戰 등 사태해결 변수
아랍 수니파 주류의 입장에서도 시리아는 반드시 되찾아야 할 자존심이다. 시리아는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최초의 아랍 중심의 국가가 들어섰던 문명지대다. 역사와 언어, 예술과 문화에서 가장 순수한 수니파 아랍정신이 흐르는 본향 같은 곳이다. 그런 시리아가 오랫동안 시아파 갈래인 알라위파에 지배당하고 있는 왜곡된 상황은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 수니파 측근들의 이탈로 오히려 알라위파들이 똘똘 뭉쳐 힘들게 잡은 권력에 더욱 집착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이슬람의 4대 칼리프인 알리의 후손으로 863년경에 죽은 아부 슈아비 누사이리 이맘을 추종한다고 해서 누사이리파라고도 불리는 알라위파들은 오랜 이슬람 역사에서 소수파로 극심한 차별과 박해를 받으면서 전 세계로 흩어져 생존해 왔다. 한때 알라위파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멀리 신라에까지 와서 정착해 살았다는 아랍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알라위파가 유일하게 권력을 잡은 시리아를 쉽게 수니파에게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서구의 군사개입 없이 중립적 세력이 완충 역할을 맡아, 바샤르 정권에 맹종하던 민간인 복장의 비밀무장 조직인 ‘샤비하’를 해체해 그들의 반인륜적 범죄를 단죄하고, 종파 간 피의 복수를 막는 일이 급선무다. 그리하여 중동역사에서 가장 조화로운 다종교 공존을 일상화했던 시리아가 온전한 자기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중동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