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산업부장
가정에만 캥거루족이 있는 게 아니다. 산업계에도 넘쳐난다. 기업 쪼개기 등을 통해 수십 년간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중소기업은 312만 개로 국내 기업 수의 99.9%를 차지한다. 대기업(1264개)과 중견기업(1291개)은 합쳐도 0.1%가 채 안 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않고 캥거루족으로 남아 있으려는 것은 ‘헬리콥터 부모’ 역할을 해 온 ‘헬리콥터 정부’ 탓이 크다. 역대 정부는 ‘중소기업은 보호, 대기업은 규제’라는 이분법적 정책을 펴 왔다. 그 결과 중소기업이 울타리를 벗어나면 세제(稅制)와 금융 등 160여 가지 혜택이 사라지고 32가지 조세 부담이 늘어난다.
우리는 내수시장 규모가 작고 무역에 의존하는 소규모 개방형 경제구조여서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자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경제위기를 이겨내고 성장을 지속하려면 대기업, 특히 산업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글로벌 대기업을 많이 키워야 한다.
이런 점에서 2015년까지 중견기업을 3000개로 늘리는 내용의 ‘중견기업 3000 플러스 프로젝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올바른 산업정책이다. 중견기업에도 중소기업처럼 상속세 공제, 연구개발 세액 공제, 하도급 거래 보호 등 혜택을 줄 테니 캥거루족에서 벗어나라는 주문을 담고 있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은 한정돼 있다. 따라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온실 속 화초처럼 안주하는 중소기업을 계속 돌봐줘야 하나. 보호와 지원 중심의 중소기업 정책을 경쟁력 강화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가 ‘헬리콥터 부모’ 역할을 하루빨리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다. 기업이 낸 이익으로 은행 이자도 다 못 갚는 한계기업, 중소기업으로 위장한 대기업 계열사, 오랜 기간 각종 혜택만 누려온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은 과감하게 끊어야 한다. 그 대신 성장하는 기업에는 지원을 더해줘야 한다. 그래야 기업가정신도 살아난다.
캥거루족 중소기업보다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 중견기업을 지원하는 게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성장하는 기업만이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층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심화에 따른 양극화의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의 진짜 해법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