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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용]로마네콩티와 뇌물 경제학

입력 | 2012-08-18 03:00:00


와인 전문가들은 세계 최고 와인으로 ‘부르고뉴의 전설’ ‘신의 물방울’로 불리는 ‘로마네콩티’를 꼽는다. 로마네콩티는 프랑스 부르고뉴 본 로마네 마을의 석회질 포도밭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된 50년 이상 된 피노누아르 포도나무 열매를 150년 이상 된 나무로 만든 오크통에서 숙성해 만든다. 연간 생산량이 6000병을 넘지 않는다. 생산연도에 따라 값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른다.

▷지난해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고액 진료 논란을 빚었던 피부과 원장 김모 씨가 오리온그룹에 “세무조사를 무마해 주겠다”며 청탁 용도로 쓸 로마네콩티를 요구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로마네콩티가 뇌물성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오베르 드 빌렌 ‘도멘 드 라 로마네콩티(DRC)’ 사장이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년 전만 해도 로마네콩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구입자였지만 지금은 마셔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뇌물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거래다. 이브가 아담에게 건넨 사과가 뇌물의 시작이라는 관점도 있다. 우리 역사에는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를 탈출하기 위해 보장왕 측근에게 청포(靑布)를 건넸고, 고려의 세도가 이자겸의 집에 뇌물성 선물로 들어온 고기 수만 근이 썩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2010년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은 이대엽 전 성남시장의 집에서 외화 뭉칫돈과 함께 포장도 뜯지 않은 고급 넥타이 300여 개와 명품 가방 30여 개, 1200만 원 상당의 양주 ‘로열살루트 50년산’, 400만 원 상당의 ‘루이13세’ 코냑 등이 나와 검찰 수사관을 놀라게 했다.

▷미국 법조인 출신 법학자 존 누넌은 저서 ‘뇌물의 역사’에서 뇌물을 마술(魔術)에 비유했다. 뇌물을 받은 사람이 정신적 포로가 돼서 안 되는 일을 되게 하고 자신의 행위를 감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사적 관계를 중시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이나 관료의 영향력이 큰 나라일수록 뇌물이 성행한다. 뇌물의 이익이 ‘뇌물에 따른 처벌×적발 확률’보다 클 때 뇌물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뇌물의 마술’을 푸는 첫 단추는 정부나 공무원이 시장에 부당하게 개입해 뇌물의 이익을 키울 싹을 없애는 일이다. 그런 다음에 처벌 수위와 적발 확률을 높여야 뇌물을 차단할 수 있다. 처벌의 두려움이 로마네콩티의 유혹보다 강해야 한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