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신화통신, 재판 전말 공개
이 같은 내용은 9일 재판을 취재한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10일 방청기 형태로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보도하고 재판에 참여한 인물들이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증언함으로써 밝혀졌다.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사건 전날인 지난해 11월 12일 구 씨는 집사 격인 장샤오쥔(張曉軍) 씨를 베이징(北京)에 보내 헤이우드 씨를 충칭으로 불렀다. 이튿날 오후 9시경 헤이우드 씨는 충칭의 난산리징두자(南山麗景度假) 호텔 16동 1605호실에 들어갔다. 구 씨는 로열살루트 1병을 함께 마신 뒤 헤이우드 씨가 만취해 화장실에서 쓰러지자 방 밖에 있던 장 씨를 불러 헤이우드 씨를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한 마약 가루를 바닥에 흩쳐 놓았다. 마약 과다복용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서다.
헤이우드 씨의 시신은 살해 이틀 뒤에 발견됐다. 당시 충칭 시 부시장이자 공안국장으로 보시라이 전 서기의 오른팔이었던 왕리쥔(王立軍) 씨는 궈웨이궈(郭衛國) 공안부국장에게 사건을 맡겼다. 궈 부국장은 왕펑페이(王鵬飛) 공안국 기술수사총대장 등에게 현장 조사를 지시했다. 이들은 구 씨의 혐의를 확인하고도 알코올 과다 섭취로 결론을 내리고 시신을 서둘러 화장했다. 이들도 9일 구 씨 비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2005년 영국에서 유학하던 구 씨의 아들 보과과(薄瓜瓜) 씨를 헤이우드 씨가 도우면서 구 씨와 헤이우드 씨가 알게 됐다. 하지만 살인에 이를 정도로 사이가 틀어진 것은 충칭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을 둘러싼 갈등 때문인 것으로 검찰의 공소 내용에서 밝혀졌다고 WP가 전했다.
구 씨는 헤이우드 씨에게 충칭 시 장베이(江北) 구에서 대규모 개발투자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헤이우드 씨는 사업이 무산돼 1억3000만 파운드(약 2300억 원)의 개발수익을 얻을 수 없게 되자 구 씨 측도 책임이 있다며 수익의 10% 보상을 요구하며 사업에 관여했던 보과과 씨를 위협했다고 WP는 전했다. 다만 신화통신은 어느 지역의 개발사업 갈등인지와 액수 등은 자세히 전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보 전 서기의 부패 혐의로 연결되고 나아가 중국 지도부의 부패로 영향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 씨는 법정에서 “목숨을 걸고 그의 미친 짓을 막아야 했다”고 진술했다.
구 씨의 범행은 왕리쥔 공안국장이 올해 2월 6일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에 있는 미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하면서 불거졌다. 조사 과정에서 헤이우드 씨의 혈액 샘플에서 시안화물 성분이 검출됐고 호텔 객실에 있던 술병 마개와 찻잔 뚜껑에서 구 씨의 유전자(DNA) 성분이 발견됐다.
하지만 헤이우드 씨가 살해됐을 당시 보과과 씨는 이미 영국을 떠나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어서 ‘아들에 대한 위협’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왕 국장은 청두 미 총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시도한 데 대해 반역죄 등의 혐의로 다음 주에 재판을 받는다. 왕 국장이 어떤 신변의 위협을 느껴 망명을 시도했는지, 당시 충칭 시 서기였던 보 씨가 왕 국장의 수사 내용을 얼마나 상세히 알고 있었는지가 재판에서 드러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