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기업 싱가포르 법인에 취업 성공한 광주전자공고 박명성 군
광주전자공고 3학년 박명성 군(18)이 8일 다음 달부터 출근하게 될 제니스의 설명자료를 들고 자신감 넘치게 웃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열여덟 살 명성이는 이달 말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탈 생각에 부풀어 있다. 비행기를 타는 건 처음이다. 몇 번이고 컴퓨터 모니터에 싱가포르 지도를 띄워놓고 행선지를 찾느라 마우스를 움직여본다. 곧 3학년 2학기 개학이지만 친구들과도 이별이다. 겉으로는 “빨리 나가라”는 어머니와 헤어져 해외에 나가 있는 것도 못내 마음에 걸린다.
전남 광주시의 광주전자공고 3학년 박명성 군은 9월 1일부터 말레이시아의 공조기기 전문기업인 ‘제니스 이앤드시(Zenith E&C)’의 싱가포르 법인에서 일한다. 1977년 설립된 이 회사는 2003년까지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KLCC(452m·88층) 같은 랜드마크 빌딩의 에어컨 설치 등을 맡았다. 싱가포르 법인은 지난해 매출이 600억 원이 넘었고 직원 수도 200여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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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KB금융그룹이 5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주관한 ‘2012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 참석했다. 그 얼마 전 우연히 유인물을 받으러 교무실에 갔다가 선생님 책상에 놓인 취업박람회의 해외취업 공문을 봤다. 그날 수업이 끝난 뒤 혼자 교무실을 찾아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았다.
평소 해외근무를 해보고 싶었던 그는 이력서 영어구사능력 칸에 호기롭게 ‘상(上)’이라고 적었다. 나중에 ‘상’이 토익 800점 이상을 받는 영어실력을 뜻한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토익은 한 번도 봐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 역시 솔직하게 작성했다.
그가 여덟 살이던 2002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2년 전 형이 아버지를 모시고 우연히 이비인후과에 갔다. 평소 아픈 내색을 하지 않는 아버지였다.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후두암인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기초생활수급대상 가정이 됐다.
중학교 2학년 때 형이 대학에 입학하자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가는구나’ 싶어 대학을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머니 혼자 아들 둘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자신의 대학 뒷바라지까지 하게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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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은 반에서 상위 30% 안에 들었다. 고교 3년간 계속 반장도 했다.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고민을 잘 해결해주고 스스럼없이 어울려 인기가 좋았다. 말도 잘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라는 평도 들었다.
○ 꿈꾸던 해외근무가 현실로
취업박람회에서 제니스 싱가포르 법인 임원과 화상면접을 했다. 다행히 그 임원이 한국인이었다. 영어로 몇 마디 자기소개를 한 뒤 한국말로 대화했다. 임원은 자기소개서에 적은 내용을 위주로 박 군의 됨됨이를 살피는 질문을 던졌다.
면접이 끝날 즈음 임원은 “명성아, 너는 총기(聰氣)가 있어서 어떤 회사든 네 총기를 알아본다면 널 데려갈 거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합격을 예감했다. 싱가포르 법인 측은 “박 군이 열정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며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정부는 박 군이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해외취업에 성공한 첫 사례로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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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군은 요즘 “벙어리 박명성이 아닌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박명성이 되고 싶다”고 속으로 되뇐다. 사실 에어컨 공조시스템 관련 지식은 없다. 하지만 충분히 노력하면 관련 기술을 배울 거라는 자신감 하나는 넘친다.
“기술을 배워서 나중에 사업을 할 수도 있고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도 나중에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대학요? 저는 특성화고 간 것도 취업이 목표였고 어렸을 때부터 돈맛을 알아서요(웃음). 혹시 취업해서 필요하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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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