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은 때로 눈부신 전적을 올리기도 했으나 한계도 뚜렷했다.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농민군은 전술전략이나 지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전투에서 많은 희생자를 냈다. 관군과 대립하거나 내부에서 의견 충돌이 빚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구한말의 의병들은 세계를 내다보는 눈이 부족했고 반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이념을 추종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의병 활동이 활발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라꼴이 엉망이어서 정규 군대가 제 몫을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의병 정신이 기괴하게 왜곡된 형태로 사이버공간에서 표출되고 있다고 하면 선열을 너무 모독하는 일이 될까. 한국 누리꾼들이 집요한 추적 끝에 런던 올림픽 여자 펜싱 에페 준결승전에서 신아람 선수를 패배하게 만든 오스트리아 심판의 ‘신상’을 털었다. 누리꾼들은 신아람의 상대 선수였던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의 페이스북을 공격하고 그의 누드 사진을 뿌렸다. 딴에는 그게 ‘불의에 맞서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한체육회와 같은 무능한 공적 조직을 대신해 자신들이 사적인 응징을 가해야 한다고 여긴 듯하다.
광고 로드중
장강명 산업부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