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유작
멕시코의 거장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 내부. 벽에 걸어놓은 그림이 돋보이도록 외부 빛을 차단하고 벽면을 흰색으로 칠하는 다른 갤러리들과 달리 창을 내고 천장을 분홍색으로 칠해 자연광과 외부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여 감상의 대상이 되도록 설계했다. 빛의 이동에 따라 내부의 풍경도 변화한다. 동아일보DB
2008년 10월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의 건설현장을 둘러보러 내한했던 리카르도 레고레타.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고요히 들어선 이 레고레타의 유작을 놓고 제주도와 한국 건축 및 미술계가 들끓고 있다. 제주의 대표적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갤러리가 우여곡절 끝에 철거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파트리시아 에스피노사 멕시코 외교장관은 2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한 멕시코대사관은 이날 “카사 델 아구아는 멕시코 현대 건축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며 멕시코 정부의 이 같은 공식 방침을 확인했다. 이에 앞서 마르타 오르티스 데 로사스 주한 멕시코대사는 올해가 한국-멕시코 수교 50주년임을 강조하며 청와대와 정부 관련 부처, 제주도청과 서귀포시청을 찾아가 철거 중단을 요청했다.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바다가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 동아일보DB
6일은 카사 델 아구아의 운명에 있어서 결정적인 날이다. 갤러리에서는 현재 철거에 반대하는 한국 조각가 20명이 ‘레고레타-그의 공간을 품다’라는 제목으로 철거를 막기 위한 ‘방패용’ 전시를 하고 있다. 이 전시는 6일 끝나지만 철거 소식을 들은 건축학도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 데다 서귀포시의 철거작업을 지연시키기 위해 작가들은 이달 말까지 전시를 연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서귀포시는 다음 달 6일 개최되는 세계자연보전총회 이전에 공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서둘러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오희범 서귀포시 도시건축과장은 “문제의 건축물은 중문관광단지 환경영향평가 합의 내용에 따라 건축물이 들어설 수 없는 자리에 지어진 임시건물이어서 존치 기간이 만료된 이상 법적으로 철거를 피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