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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무식(無識)의 힘

입력 | 2012-08-04 03:00:00


쇼펜하우어가 그랬습니다. 생에의 의지는 맹목적이라고. 그러면 사랑에의 의지는 어떨까요? 2012년판 ‘폭풍의 언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맹목적이지 못해 아프고 또 맹목적이어서 아픈 게 사랑에의 의지일 거라고. 그런데 이상합니다. 예전에 그토록 좋아했던 히스클리프가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이미 그가 살고 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알겠습니다. 히스클리프에게 끌렸던 이유를. 그의 매력은 허영심과 진심을 본능적으로 구별하는 직관이었습니다.

히스클리프는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어두움을 사랑하는 외로운 아이에게 명랑한 열정의 캐서린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목숨이었겠지요. 그들은 늘 함께 놀고, 함께 사고를 치고, 함께 불행을 겪고, 함께 행복을 누리고, 함께 성장했습니다. 남매이고, 연인이고, 친구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조건 좋은 남자 린턴이 청혼하자 캐서린이 흔들립니다. 부유하고 세련되고 안정적이나 지루하기만 한 남자와, 심장이 사랑하지만 밑바닥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남자, 당신이라면 누구를 선택하나요?

캐서린이 조건에 이끌려 린턴과 결혼해서 우아하고 신경질적으로 살아가는 동안 심장을 잃어버린 히스클리프는 악마가 되어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그들이 잃어버린 진실의 빛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폭풍의 언덕’은 여성적 영화입니다. 젊은 날 내 친구들은 모두 히스클리프에게 열광했고, 히스클리프의 현대판이었던 ‘외인구단’의 까치에 열광했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랬던 걸까요? 그건 단지 한 여인만을 바라보는 지극한 사랑의 노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영화를 보니 그때 그 시절 우리가 보입니다. 이제 나는 웃습니다. 히스클리프에겐 우리에게 부족했던, 너무나 부족했던 힘이 있었습니다. 바로 무식(無識)의 힘! 배운 게 없어 무식한 게 아니라 배울 게 없어 무식한 그 뚝심의 힘! 악을 두려워하지도 않지만, 선(善)의 철창에도 갇히지 않는 힘!

매일 무표정한 얼굴로 규칙을 던져주는 선생님은 우리의 검열관이었고 좋은 성적표, 잘잘못에 민감한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끝나는 줄 알았고, 친구라는 이름의 경쟁자보다 1점이라도 더 받으려 했습니다. 1점 차로 정해지는 성적표에 기를 쓰며 스스로 규칙이 되고 검열관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검열하며 살아온 안정적 모범생은 통제하기도 쉽고 다스리기도 쉽지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느낌을 갖긴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자기성찰을 거쳐 나온 ‘자기’ 생각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이기 쉽습니다. 오랫동안 원하는 것을 그냥 원하는 것으로만 그치게 둔 채 평가에 맞춰 해야 하는 일에만 매진한 인생은 곧잘 사회적 편견을 제 생각으로 착각하니까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유연성이 없어서 하인처럼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아주 잘 알고 행하지만, ‘나’의 깊은 곳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합니다.

반면 무식한 히스클리프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알고, 당연히 허영심과 진심을 분명히 구별해 냅니다. 그런 그에게는 자기의 말이 있습니다. “너(캐서린)는 그를 사랑하지 않지만 너의 헛된 욕심이 그를 허락한 거야. 왜 너를 싸구려로 만들었지?”

‘전쟁과 평화’에서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사랑에의 의지가 헛된 욕심으로 좌절되면 생에의 의지도 꺾이나 봅니다. 죽어서도 죽을 수 없나 봅니다. 캐서린처럼!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