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소설가
이런 생각들에 4년마다 제동이 걸린다. 마치 나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의 논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사람처럼 말이다. ‘고생 끝에 낙이 아니라 병이 온다’거나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정말 늦은 거다!’ 같은 시니컬한 말을 잘만 해대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4년마다 돌아오는 올림픽 선수들의 인생 스토리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럴 수밖에!
운동 경기에는 삶에는 없을 것 같은 규칙이 있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 세심히 움직이는 인간이 보여주는 동선은 지극히 아름답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압축되어 있는 풍경들, 도전이라는 말이 통용될 수 있는 올림픽에는 벅찬 환희가 있다.
‘금녀의 벽’ 런던올림픽서 무너져
올림픽의 여자 선수 하면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뛴 미국의 육상 선수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다. 어마어마한 근육질의 그녀가 짙은 화장을 하고, 반짝이는 귀걸이와 팔찌를 주렁주렁 매달고, 매니큐어로 손톱을 화려하게 치장한 채 맹렬히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야생마 한 마리를 보는 듯했다. 내가 넋을 놓고 바라봤던 장면은, 그녀가 늘 ‘웃으며’ 달리는 모습이었다.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말이다. 자신의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고도, 여전히 깨지지 않는 100m 육상 세계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나는 늘 감동을 느꼈다.
나디아 코마네치 같은 체조 선수를 꿈꾸던 ‘옐레나 이신바예바’. 그녀가 계속해서 자라나는 큰 키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28번이나 세계 신기록을 갈아 치운 장대높이 선수가 되는 이야기에는 감동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꿈이 바뀌었을 때 생겼을 좌절의 낙폭만큼 그녀가 올려놓은 세계 기록의 높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녀가 장대를 들고 뛰어오를 때, 인간이 날아오를 수 있다면 바로 저렇게 날 것이라 생각되는 포물선 위에는 눈물과 노력이 합쳐져 만든 미학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스케이터지만 스케이트 신발 속에 감추어진 김연아의 발에는 품격이 있다. 찢어진 굳은살과 상처로 뒤덮인 그 발에는 인간의 도전이 의미하는 바를 시적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전설적인 복서 무함마드 알리의 딸이자 프로 복싱선수인 라일라 알리. 동아일보DB
몇 년 전, 길을 걷다가 보게 된 한 광고 속에는 위대한 권투선수 무함마드 알리가 한 흑인 여자와 권투 경기를 하고 있었다. 매서운 눈빛의 어린 여자. 광고 속에는 이런 말이 흐르고 있었다.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했다, 여자는 권투를 할 수 없다고.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해냈다. 나는 링 위에 섰다. 내 아버지 알리의 외침이 들려온다. 싸워라 내 딸아, 넌 할 수 있어!’
女전사들의 ‘금빛 낭보’ 기대
‘넌 할 수 있어!’ 같은 캠페인송 후렴구 같은 말이 내 가슴을 친 건 정말이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라일라 알리. 무함마드 알리의 딸이자, 직업 권투 선수였다. 한 스포츠 회사의 광고에서 본 ‘불가능은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광고 카피가 아닌 현실이 되는 것….
백영옥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