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산업부장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이 도마에 올랐다. 이른바 ‘재벌 개혁’을 넘어 아예 해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얼핏 선거와 재벌이 뭔 관계가 있는가 싶다. 하지만 표심을 잡아야 하는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앞다퉈 경제민주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양극화 해소에, 복지 확대를 외치니 ‘없는 다수’는 귀가 솔깃하다. 유력 대선주자들까지 가세하면서 재벌은 공공의 적(敵)으로까지 비친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잠식, 경영권 편법 승계, 중소기업 옥죄기, 배임 및 횡령 등 일부 대기업과 오너 일가의 탐욕과 탈선이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먹고사는 게 급해, 나라 경제와 아들딸 일자리를 생각해 이런 행태를 알고도 모르는 체 참아 오던 국민의 반감도 높아지고 있다.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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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업이라도 창업하고 경영해 본 사람은 안다. 정치권이 기업을 키우기는 어려워도 죽이기는 쉽다는 것을. 1947년 부산에서 ‘왕자표’ 고무신 생산으로 출발해 중화학, 섬유, 건설, 금융 분야로 진출하며 한때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랐다가 전두환 정부 시절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된 국제그룹 사례가 잘 보여준다. 표면적인 이유는 무리한 기업 확장과 해외 공사 부실이었으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양정모 회장이 정권에 밉보여 해체됐다는 것이 재계의 정설이다. 헌법재판소는 나중에 ‘공권력에 의한 국제그룹 해체는 위헌’이라고 결정했으나 이미 차가 떠난 뒤였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정치의 파워는 경제와 비교가 안 된다. 최근에만 해도 정치인에게 잘 봐 달라, 살려 달라며 돈을 줬던 기업인들이 구속됐다.
기업이나 기업인에게 잘못이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묻되 기업과 오너는 구분해야 한다. 오너가 밉다고 기업까지 죽이면 안 된다. 누가 뭐래도 경기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핵심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도 경제민주화라는 새로운 환경을 피할 수 없다면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하고 적응하기 바란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김상철 산업부장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