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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의 東京小考]일본인, 시위에 다시 눈을 뜨다

입력 | 2012-07-26 03:00:00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도쿄(東京) 중심지에 나가타(永田) 정이라는 구역이 있다. 총리 관저와 국회의사당, 각 정당 본부가 밀집한 일본의 ‘정치 1번지’다.

이 나가타 정이 요즘 금요일 밤마다 ‘시위 1번지’로 변했다. 저녁부터 시민들이 총리관저와 국회를 둘러싸듯 모여서 “원전을 중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수도 수만 명이나 된다.

지난주 금요일 현장에 가보니 역시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수많은 깃발과 현수막은 ‘원전을 없애라’ ‘재가동 그만두라’ ‘No Nukes(비핵)’ 등의 문구로 덮여 있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이름을 빗대 ‘노다, NO다’라고 쓴 것도 있었다. 퇴근길 직장인과 학생, 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부도 있었다. 필자는 오랜 기간 나가타 정 취재를 해왔지만 이 정도 규모로 다양한 시민이 시위에 참가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지난해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쓰나미(지진해일)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이 심각한 사고를 일으켰다. 후쿠시마 현 주민 가운데 16만 명이 지금도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모두 자신의 집과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고 후 일본 내 원전은 점검 등으로 차례차례 운전정지 상태가 됐고, 올해 5월부터는 ‘원전 가동 제로’가 된 기간도 1개월여 있었다. 하지만 6월 중순경 후쿠이(福井) 현 간사이전력 오이(大飯)원전이 운전을 재개했다. 전력 사용이 정점에 달하는 한여름을 맞아 전력부족이 발생하면 큰일이라고 정부가 판단했던 것이다. 이 운전 개시가 ‘반(反)원전’과 ‘탈(脫)원전’ 여론에 불을 붙였다.

원전사고가 “反원전” 데모 불붙여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검증 작업이 진행됐는데 도쿄전력은 물론이고 이를 감시하는 행정기구와 정치가도 쓰나미 대책을 만만하게 봐 온 점이 지적됐다. 사고 원인과 책임이 완전히 규명된 것도 아니고 원전 감시 체제가 제대로 재구축된 것도 아니다.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가 내건 ‘탈원전’의 대방침은 노다 정권에서 모호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 재가동이 무슨 말이냐는 분노가 자연스럽게 시위를 촉발했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시위가 일상이었던 필자의 학생 시절이다. 권위주의 대학 당국에 분노한 학생들이 대학 당국을 상대로 투쟁에 나섰는데 배경은 베트남 전쟁이었고 미국을 지원하는 자민당 정권에 대한 분노였다. 도쿄에는 반전 시위가 넘쳐났다.

시대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약 10만 명의 학생이 국회를 포위한 1960년의 안보투쟁이 있었다. 일미 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한 시위였는데 급진적인 학생들이 국회 난입을 시도해 경찰과 난투극을 벌이고 여대생이 한 명 사망하는 비참한 결말을 초래했다. 나는 당시 중학생이었지만 대학생들에게는 혁명전야를 떠올리는 비장감도 감돌았다고 한다.

다시 지난주 금요일. 나는 시위를 보러 간 총리 관저 앞에서 후배기자를 만났는데 40세인 그가 시위다운 시위를 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법하다. 과격해진 학생운동이 좌절된 이후, 일본에서는 시위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에서는 이따금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지곤 하지만 일본인들은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한국은 대단해’라며 놀라워하거나 부러워한다. 시위의 에너지조차 사라져버린 일본 사회를 자조하는 것이다.

그런 일본인이 시위에 눈을 뜬 것은 원전사고 덕분이다. 산업계와 정치가, 관료의 무책임이 터무니없는 사고를 일으킨 데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실업과 빈곤이 유례없이 큰 문제가 된 시대지만, 사람들을 시위 현장에 모이게 하는 것은 직접적인 자신의 이해관계보다 사회의 가치관을 탈원전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공적인 동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옛날 시위와 달리 요즘 시민은 과격하지 않다. 오히려 정부를 설득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경찰의 유도에 질서 정연하게 따른다. 처음에는 시위대가 차도에 넘쳤지만 2회째부터는 경찰이 철책을 쳐 보도 내로 행진을 제한했다. “시위에 참가하는 분은 저쪽이 줄 끝이니까 거기서 줄을 서 주세요”라고 부드럽게 안내하는 경찰의 모습은 인기 스타의 콘서트에 몰려든 관객을 안내하는 듯하다.

정치인-관료 무책임에 분노 표출

과거 반원전이라고 하면 주로 좌익 진영의 슬로건이었다. 경찰도 경계감이 있을 법한데 이번에 경비 방법이 부드럽고 세련되어진 것일까. 아니 어쩌면 경찰 가운데도 탈원전파가 늘었는지 모르겠다. 원전사고가 있으면 경찰의 일은 말 그대로 목숨을 내놓는 일이 된다. 그런 일을 피하고 싶은 게 틀림없다.

시위가 일본의 원전정책을 크게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시위에 나타난 보통시민의 감각 변화는 틀림없이 이 나라를 계속 바꿔나갈 것이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