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호 객원논설위원
내곡동 사저-민간인사찰 수사 미흡
몇 달씩 걸린 떠들썩한 수사 끝에 내놓은 결과치고는 허점이 많다는 게 중론(衆論)이다. 그중에는 대통령을 불신하다 보니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등을 돌린 사람도 있고, 전형적인 눈치 보기 수사라고 지레 짐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제쳐 두고 사저 땅 매입을 주도하지 않은 아들의 변명을 수용해 죄가 안 된다고 한 것이나, 사찰의 보고계통이 명시된 문건이 나왔는데도 윗선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을 쉽게 납득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땅히 불러서 엄히 추궁해야 할 대통령의 아들을 서면조사로 대신하고, 사찰 결과 보고 선상에 있는 대통령실장에 대한 조사를 아예 포기한 절차상 잘못도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범죄 혐의를 규명하는 수사에 나설 때는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한 꺼풀씩 벗겨가며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이란, 저절로 지워지거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덮어버린 흔적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작업이다. 범죄의 특성상 관련자의 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라면 진실에서 벗어날 위험이 더욱 커진다. 많은 인력이 투입돼 온갖 정성을 쏟아 끌어낸 결론도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거꾸로 선입견을 가지고 있거나 수사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꼬투리를 잡으려 달려든다. 그러다 보니 그런 시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 치의 예외도 없이 원칙과 절차를 지키고 수사대상과의 관계에서 의심받을 요소를 사전에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측근을 둘러싼 의혹의 규명은 역대 정부에서 임기 말 되풀이되는 검찰의 숙제가 돼버렸다. 피할 수 없는 이 숙제에 대한 해답이 신뢰를 받느냐는 검찰이 수사대상과 대립각을 세우며 얼마나 치열하게 파고들었느냐, 평소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의심받을 요소가 있느냐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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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혁의 도마에 오를 검찰
국민의 정부 시절 양자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구호 아래 검찰을 정권 유지에 이용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당시 대통령이 천명했으나, 결국 공염불에 그친 것이다. 시스템의 변화까지 시도해 본 것은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파견은 물론이고 검사 출신 법조인의 청와대 입성이 봉쇄되고 판사 출신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통할하되, 검찰총장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런 구도는 검찰을 흔들어 놓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의심받았고 그에 수반되는 갈등이 업무의 비효율을 가져오기도 했다.
2003년부터 이듬해까지 진행된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 당시에도 ‘살아 있는 권력에 관대하고 야당 쪽 모금은 가혹하게 파고든다’ ‘현직 대통령을 소추할 수 없다 하더라도 불러서 조사는 해야 하지 않느냐’ 같은 여론의 매서운 질책이 있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았다.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진실을 파고든 검찰 나름대로의 노력을 평가해 준 것이다. 그런 여론의 지지는 개혁의 명분 아래 추진된 중수부 폐지 움직임도 무산시킬 정도였다.
대통령을 둘러싼 측근들의 비리 의혹을 명쾌하게 떨어낼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개선돼야 한다. 검찰이 상처를 입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대통령과 정부 전체의 신뢰가 떨어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두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지난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 이는 검찰의 변화 의지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눈앞의 불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대의를 지키겠다는 대통령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차기 정부에서 검찰은 다시 개혁의 도마에 오를 것이다. 다가올 12월 대선에서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깨끗하고 당당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면 검찰과의 관계 정립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검찰개혁의 첫 단추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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