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부터 선거인 등록
해법은 이미 나와 있는데 도입을 미루는 희한한 일이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재외국민선거를 두고서다. 여야 모두 재외선거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법안들을 내놓고도 정작 법안 처리에는 관심이 없다. 재외선거의 투표율이 올라가면 여야 어느 쪽에 유리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재외선거가 예산만 쏟아 붓고 재외국민에게 외면받는 ‘애물단지 제도’가 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재외국민은 이달 22일부터 10월 20일까지 선거인 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선거인 등록을 하려면 재외공관까지 직접 찾아가야 하는 탓에 등록률이 한 자릿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4·11총선 때는 전체 재외선거권자 223만3193명 가운데 12만4424명만이 신고해 등록률이 5.6%에 그쳤다.
투표율은 더 낮았다. 재외국민은 투표 역시 재외공관까지 가서 해야 한다. 중국 푸젠(福建) 성 샤먼(廈門) 시에 사는 재외국민은 선거 등록과 투표를 위해 비행기로 3시간 거리인 주광저우 총영사관을 두 번 찾아가야 하는 식이다. 광저우 총영사관이 관할하는 면적은 대한민국 영토의 3배 규모다. 이 때문에 중국의 재외선거 투표율은 선거권자 29만5220명 중 7876명이 참여해 2.7%에 그쳤다. 세계적으로 투표에 참여한 재외국민은 5만6456명. 투표율은 2.5%였다.
여야는 총선 직후 재외선거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법안들을 앞다퉈 내놓았다.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은 재외선거 신청 시 우편등록을 허용하고 투표소투표와 우편투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통합당 김성곤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선 등록신청을 아예 인터넷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중앙선관위도 이달 2일 여섯 가지 내용을 담은 재외선거 개정의견을 국회에 냈다. △등록신청 순회 접수제도 도입 △재외투표소 추가 설치 △재외선거인 영구명부제 도입 △가족의 대리신청 허용 △파병 군인과 공관 미설치 국가의 우편투표 허용 △투표하지 못한 재외선거인의 귀국투표 허용 등이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등록과 투표의 편리성을 높이자는 데 이견이 없는 상태다. 그만큼 개정안이 금방 통과될 것 같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새누리당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은 18대 국회에서 재외선거 관련 조항을 개정하자는 데 줄곧 반대해왔다”며 “18대 때 법을 개정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선거일정상 법 개정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대선 전에 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다.
이는 여야가 재외국민의 편의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지 주판알만 튕긴 결과다. 총선 비례대표선거에서 재외국민은 야권에 더 많은 표를 줬다. 정당별로 새누리당 40.1%, 민주당 35.0%, 통합진보당 14.4%를 득표했다. 민주당과 통진당의 득표율을 합하면 49.4%로 새누리당을 앞선다. 하지만 등록과 투표가 쉬워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이 힘들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