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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박정훈]‘꼴찌 서기호’

입력 | 2012-07-12 03:00:00


박정훈 사회부 차장

한마디로 금배지를 주웠다. 10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의원직을 승계한 서기호 전 판사(42) 이야기다. 그는 4월 총선 출마 후보 1115명 중 301번째로 꿈을 이뤘다. 국회의원이 될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한 거라곤 현직 대통령에게 ‘빅엿’을 먹인 것뿐이었으니 ‘주웠다’는 표현도 과한 게 아닐 듯싶다. 50년 가까이 지역구를 누비며 14번이나 총선에 출마해 딱 한 번 당선된 김두섭 전 의원(82) 같은 정치인으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다.

서 의원은 명실상부한 ‘꼴찌 법관’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올해 재임용을 앞둔 10년차 법관 73명 중 공동 71등이었다. 10년간 다섯 번이나 ‘하’ 평점을 받았고 역시 하위권인 ‘C’ 평점을 한 번 받았다. 그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일각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을 비판했다가 찍혔다’는 말이 나왔지만 법원 내부에서 동조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꼴찌는 조직이 더 잘 아는 법이다. 그는 진보라서 잘린 것도, 진보 흉내를 내다가 잘린 것도 아니라 무능해서 잘린 것이다.

정치지망생 서기호는 ‘모두가 아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는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부장판사와 의견대립이 있어 불이익을 받았다’거나 ‘사건처리 통계가 평균치에 미달했지만 불량한 수준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답을 밀려 써 꼴찌했다”는 초등학생의 변명과 비슷한 논리였다.

그는 ‘72자만 적힌 기록적인 판결문’으로 2010년 이미 화제가 됐다. 약자의 편에 서는 진정한 진보였다면, 빗나간 권위의식을 법복 뒤에 숨긴 판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판결문이었다. 대한변협은 이 판결문을 문제 삼아 대법원에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공문까지 보냈다. 그는 법원 내 ‘정통 진보’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도 아니었다. ‘가카의 빅엿’ 파문을 일으키기 전까지 그의 미니홈피는 해외여행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서 의원이 퇴출되자 진보진영은 그를 ‘이명박 파쇼에 저항하다 산화한 영웅’으로 대접했다. 얼떨결에 진보의 상징이 된 그는 이정희 당시 당 대표의 권유로 입당해 통진당에서 비례대표 14번을 받았다. 당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순번이었다. 서 의원은 입당의 변에서 “권력에 의해 법복이 찢겨졌다”며 “국회의원이 돼 뿌리째 헤집어서 근본적인 사법개혁에 나서겠다”고 했다.

총선 내내 “통진당을 지지해 달라”고 유세하던 그는 비례대표 부정경선 문제가 불거지자 “정치인 이정희를 지지한 적이 없다”고 트윗했다. 한 누리꾼은 서 의원의 블로그에 “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지지를 호소하더니 이제 그 정당을 바로잡겠다고 한다”며 “보좌관만큼도 모를 텐데 조용히 의정활동이나 배우라”고 썼다. 정치인 서기호도 법관 서기호만큼 무능하다는 걸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그가 부정경선 파문 덕에 기적적으로 금배지를 달고 법제사법위원회에 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한 판사는 “대법원 국정감사 때 볼만하겠다”고 했다. 최고 법관들이 ‘꼴찌의 훈계’를 듣고 있으려면 속깨나 탈 거라는 말이었다.

서 의원은 최근 ‘국민판사 서기호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그 책에서 “법복은 강제로 벗겨졌지만 국민법복을 입어 든든하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국민의 개념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사이비 진보 장사’로 권력을 쥔 그가 자신을 수식하는 말로 쓸 수 있는 단어는 아닌 듯싶다. 비리에 물든 가짜 우파만큼이나 무능하고 진정성 없는 거짓 좌파가 얼마나 위험한지 국민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그 역시 ‘꼴찌 서기호’의 무능이다.

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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