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기자
그러면 남들은 어떨까. 프랑스를 보자. 연말은 크리스마스와 신년파티(카운트다운으로 새해 맞기)로 들뜬다. 파티 의상과 친지 선물, 레스토랑 예약 등등. 그런데 해만 바뀌면 관심과 화제는 온통 여름휴가로 쏠린다. 그리고 여름이 닥치면 직장이고 사업이고 몽땅 접고 집을 나선다. 복닥대던 파리가 텅 빌 정도다. 이것이 ‘비우다’(바캉스)가 곧 ‘휴가’를 의미하게 된 프랑스의 휴가문화다.
그러면 ‘여행 동물(Travel Animal)’이라는―자타 공인으로 세상에서 여행을 가장 많이 하고 즐겨서―독일인은 어떤가. 이들은 더하다. 연간 휴가 일수를 보자. 프랑스가 한 달인 데 비해 독일인은 두 달이다. 의사도 그 두 달은 아예 진료실 문을 걸어 닫고 휴가를 떠날 정도다. 단언컨대 그들에게 휴가―여행―는 삶과 일, 곧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다. 휴가와 여행을 위해 돈도 벌고 일도 하고 또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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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왜 일을 하느냐에 대한 자각이다. 한국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삶의 지수가 거의 꼴찌인 31위다.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357시간(2006년 기준)으로 가장 많다. 1년 365일 하루도 안 쉬고 매일 6시간씩 일하는 셈이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비극적 수치에 함몰됐는지, 스스로 잘 안다. 더이상 이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려면 이것부터 깨달아야 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근본적인 목적이 지금 소속된 조직을 위해 일하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불가(佛家)에선 말한다. 사람이 죽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데는 1억8000만 겁(劫)―1겁은 1000년마다 날아온 학이 날개로 쓸어내린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기까지 걸리는 긴 시간―이 걸린다고. 사람의 존귀함을 적시한 은유다. 그런 귀한 존재를 나 스스로 일의 노예로 만들 수는 없다. 휴식은 나 스스로가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을 하는 목적은 나를 위한 나의 휴식이어야 한다. 우리의 전근대적인 휴가문화 개선은 거기서 비롯돼야 한다. 나를 일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는.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