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논설위원
김문수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주는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역설했다. 현행 경선 룰은 당원과 국민 참여 비율이 5 대 5다. 김문수 정몽준 이재오 등 비박(非朴) 3인방은 경선 룰 변경에 한목소리를 냈다. 4·11총선 승리로 더 단단해진 박근혜 대세론을 허물기 위한 승부수였다. 김문수는 “(경선 룰이 바뀌지 않으면) 경선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하지만 그는 경선 룰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4·11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승리는 사실상 박근혜의 승리였다. 박근혜는 거당적 요청에 의해 구원 등판했고, 유권자는 그런 박근혜의 손을 들어줬다. 비박 진영이 총선 이후 경선 룰 협상 과정에서 박근혜의 사당화(私黨化)를 거듭 비판해도 울림이 적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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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던 김문수는 전향 선언 후 1996년 이재오와 함께 새누리당 전신인 신한국당 의원이 됐다. 박근혜보다 2년 앞선 시점이다. 김문수와 이재오는 모두 새누리당의 주인이라고 자부할 만하다. 이 가운데 김문수는 이명박 정권의 ‘2인자’ 색깔이 짙은 이재오와 달리 독자적 목소리를 내왔다. 새누리당에 뿌리를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몽준과도 차별화된다. 김문수는 비박 3인방 울타리를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김문수는 그동안 대한민국 건국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보수세력의 전도사역을 자임해왔다.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업그레이드하는 선진화의 기수로 나섰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 정가에선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북한 인권 이슈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김문수를 높이 평가하더라”라고 말했다. 김문수는 경선 룰에 집착하느라 자신만의 ‘색깔’을 효과적으로 부각하지 못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의 서막이 올랐지만 박근혜냐, 아니냐라는 정치공학만 판을 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이뤄야 하지만 새누리당이 이를 위한 국가전략을 치열하게 모색하는 모습은 안 보인다. 범좌파 진영이 종북(從北)주의와 선을 긋고, 재벌개혁 방식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제 김문수는 국가전략을 놓고 박근혜와 한판 승부를 벌일 때가 됐다. 대선후보 경선은 그 무대가 될 수 있다. 승패를 떠나 보수세력의 개혁과 국가발전전략을 놓고 박근혜와 내공을 겨루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대세추종당’이라는 새누리당의 고질병을 깰 수 있는 기회도 그런 과정을 통해 생길 것이다. 룰 시비에 발목 잡혀 김문수의 투혼과 잠재력을 보일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이는 자신의 정치적 퇴조를 앞당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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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