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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예전에 본 듯한, 그 무대 그 스토리…

입력 | 2012-06-19 03:00:00

■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



일제강점기 남도의 이발소를 무대로 한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에서는 오른 다리를 잃은 일본군 장교 시노다(서상원)와 왼발을 못 쓰지만 그의 발을 씻어주는 진희(최수현)의 동병상련이 극을 이끄는 중심축이 된다. 극단 미추 제공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 ‘각시탈’은 허영만 화백의 만화가 원작이다. 허 화백이 등단한 이후 두 번째로 발표한 동명의 만화(1974년 작)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허 화백의 또 다른 만화 ‘쇠퉁소’(1982년 작)를 떠올리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만화는 일제강점기 힘없는 조선민중을 위해 싸운 복면영웅이 등장하는, 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허 화백은 초기작인 각시탈의 구도에 살짝 러브 스토리를 가미하고 원조 복면영웅을 주인공의 형에서 일본인 친구로 바꿔 쇠퉁소를 내놓았다.

재일교포 정의신 작가가 한국을 무대로 최초로 쓰고 연출한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는 이런 각시탈과 쇠퉁소의 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연극은 정 작가의 대표작 ‘야끼니꾸 드래곤’(2008년 작)의 기본 골격과 캐릭터를 그대로 차용했다. 사람 좋은 아버지(정태화)와 생활력 강한 어머니(고수희, 배우까지 같다), 절름발이지만 착하디착한 첫딸(최수현), 가수를 꿈꾸는 명랑한 둘째 딸(염혜란), 큰언니를 사랑한 남자와 결혼하는 셋째 딸(장정애). ‘야끼니꾸…’의 막내아들은 ‘봄의 노래…’에선 선머슴 같은 막내딸(김소진)로 바뀌었지만 비극적 운명을 맞는 점은 같다.

정 작가는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군 전범으로 처형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의 비극을 그린 ‘적도 아래 맥베스’(2010년 작)의 주제의식을 투영했다. 1944년 전라도 어느 섬을 무대로 이발소를 하는 홍길네 가족과 섬에 주둔한 일본군 군인들 사이의 애증을 녹여내는 방식으로.

극 중 일본군은 크게 둘로 나뉜다. 전투 중 오른 다리를 잃은 시노다 중좌(서상원)처럼 제국주의 전쟁에 염증을 느끼는 일본인 장교와 강제 징집되거나 돈 벌려고 입대한 대운(황태인) 같은 조선인 병사들이다.

홍길네와 이 군인들 간 감정의 장벽은 정 작가 특유의 웃음과 눈물이 범벅된 푸닥거리로 씻겨나간다. 키워드는 동병상련이다. 시노다는 같은 장애인인 첫딸 진희와 사랑에 빠진다. 다른 세 딸은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끌려가게 되는 조선인 사내들과 얽혀들면서 일본군 앞잡이라 손가락질 받는 그들 대다수 역시 피해자임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이런 깨달음이 재일교포 1세인 자신의 부친이 일본군 헌병 출신임을 알고 갖게 된 오랜 고민의 산물이라고 고백한다. 아버지를 모델로 삼은 듯한 대운은 “일본인에게도, 조선인에게도 미움 받는 게 내 역할”이라고 토로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광복 후 일본군 헌병을 지낸 일종의 죄책감으로 반세기 넘게 고향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대운 역시 그 죄갚음을 위해 고향행을 포기하고 홍길네 곁을 지킨다.

정의신 작품을 처음 본 관객이라면 웃음과 눈물의 드라마에 취할 수 있다. 징한 전라도 사투리도 해학적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여럿 본 관객이라면 지나친 ‘자가 복제’에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아무리 개작을 잘했어도 쇠퉁소보단 각시탈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은 법이다. 게다가 홍길네 딸들의 자유분방함은 일제강점기 조선 여인네들의 현실과 거리가 멀다. 다만 일본을 무대로 한 작품만 써온 작가의, 한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 격의 작품으로 너그럽게 바라볼 순 있겠다.

: : i : : 7월 1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1만5000∼2만5000원. 02-758-215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