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교수 제공
광신양화점 광고(동아일보 1920년 6월 4일)는 구두 신은 발목 부분만 강조함으로써 시각적 주목 효과를 높였다. 한 청년이 구두를 신고 멋지게 걸어가는 순간을 부럽게 지켜보는 광경을 묘사한 컷은 수준급 카피와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다. “아! 부럽도다./시원한 청풍 부난(부는) 곳에/산뜻한 양화(洋靴·구두) 신고/활발히 거러가난(걸어가는)/저- 청년의 보조(步調)!/저- 양화 지은 곳은?” 마무리 카피를 의문문으로 끝낸 카피라이터의 놀라운 솜씨를 보라! 1단 12cm라는 작은 크기의 지면에, 그리고 6줄이라는 짧은 카피에서, 짧고 강력하게 할 말을 다하고 있다. 더욱이 시적인 리듬감까지.
인류사에서 군대가 양복을 제도화했듯이, 신발의 서양화 역시 군대에서 시작되었다. 유모토 고이치(湯本豪一)는 ‘일본 근대의 풍경’에서 군비의 근대화를 도모한 바쿠후가 서양식 군대를 만들 목적으로 외국인의 지도 아래 군사훈련을 시작하면서 병사들의 복장을 양복으로 바꿨다고 썼다. 이후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며 복장에도 서양화 바람이 불어 양복이나 양화가 급속히 보급되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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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