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 교수
소수의 강력한 이익집단 큰 영향
먼저 혜택을 보게 될 사람이 다수이기 때문에 누군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주겠거니 하고 무임승차(無賃乘車)를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해당 정책으로부터 자신들이 혜택을 보게 될 것임을 인식하기 어렵거나, 인식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응집력 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 아동, 청소년, 장애인, 이민자 등 취약(minority) 집단이 후자에 해당한다.
광고 로드중
지난달 임기를 마친 18대 국회도 국민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다수지만 목소리는 낮은 국민을 위한 몇몇 법안을 통과시키는 업적을 낸 점이다. 많은 논란 속에 통과된 일부 ‘안전 상비약’의 슈퍼마켓 판매를 허용하는 약사법 개정, 미성년자의 ‘인터넷게임 심야 셧다운제’를 도입한 청소년보호법 개정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중독자가 230만 명이 넘는다. 더욱이 아동들의 중독률이 성인보다 더 높으며 빠르게 증가하는 스마트폰 중독도 심각하다. 상비약의 슈퍼마켓 판매도 대상 약품들을 점차 더 확대해 나가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으로부터 혜택을 보게 될 당사자들은 문제를 인식하기 어렵거나, 인식하는 경우에도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점이다. 결국 이처럼 취약 집단에 관한 문제일수록 정책 결정자들의 선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정치인들이 국민으로부터 그 업적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예를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외계층 대변해 거물로 커야
달나라에 유인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등 한창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던 1960년대 미국에서 일부 국민이 기아에 허덕인다는 충격적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많은 미국인이 비만과 만성 질병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그러자 상원에 ‘영양과 인간욕구 특별위원회’(1969∼1977년)가 설치됐다. 당시는 미국에서 식품영양 관련 정책은 식품생산 업자들의 영향력에 크게 좌우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 특별위원회는 모든 국민이 굶주리지 않고 건강한 식생활을 해야 한다는 대의명분(大義名分) 아래 다양한 활동을 했다. ‘국가학교급식법’과 ‘아동영양법’ 개정을 비롯해 식품의 공급과 소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식생활 목표’와 ‘식생활 지침’ 제정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식품업자들도 건강식품의 공급에 동참하게 됐다. 이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점차 확보해 나갈 수 있었다. 이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많은 의원이 후일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조지 맥거번 위원장을 비롯해 월터 먼데일, 에드워드 케네디, 밥 돌 등 후일에 대통령 후보의 반열에 오른 정치인들이 그들이다.
광고 로드중
19대 국회는 2주가 지나도록 아직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려운 선거 과정을 거쳐 선량이 된 의원 개개인은 국가 발전과 국민을 위해 열심히 정책을 개발하고 입법 활동을 펼칠 의욕에 차 있으리라 믿는다. 이 의원들이 특히 결집력이 약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여성, 아동, 청소년, 노약자, 이민자 등 취약집단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정책을 가능한 한 많이 준비하고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4년 후 이맘때쯤 제19대 국회가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익집단보다는 목소리 낮은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많이 추진했다고 평가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와 같은 일에 앞장서 공익(公益)을 추구한 의원들이 전국 수준의 거물 정치인으로 클 수 있는 한국정치의 도래를 기대한다.
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 교수 hypai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