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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근대 선구자 최흥종-남종화 대가 허백련… 산수화에 얽힌 우정

입력 | 2012-06-08 03:00:00


광주의 근대 선각자인 오방 최흥종 목사(1880∼1966)와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1891∼1977)은 열한 살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형제와 같은 정을 나눴다. 1949년 의기투합해 가난하고 못 배운 청년들을 위해 ‘삼애학원’을 설립하고 농촌지도자 육성에 나섰다. 이런 인연으로 의재는 광복 이후 처음으로 광주시 사회장으로 치러진 오방 선생의 장례식에서 시민을 대표해 조사를 낭독했다.

오방 선생의 환갑에 의재 선생이 선물한 산수화가 조만간 의재미술관에 기증된다. 70여 년 전 인연이 아름다운 기증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의재 선생은 1941년 환갑을 맞은 오방 선생에게 직접 그린 산수화를 선물했다. 가로 53cm, 세로 180cm 크기의 이 그림은 소나무와 산수, 해와 달이 동시에 한 그림 안에 배치돼 오방의 안녕과 장수를 기원하고 있다. 그림에는 ‘오방선생(五放先生) 육십일수(六十一壽) 백련(百鍊)’이란 낙관이 한자로 찍혀 있다.

오방 선생의 손자인 최협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장은 우여곡절 끝에 이 그림을 소장하게 됐다. 오방은 생전에 다른 누군가에게 이 작품을 주었고 이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15년 전 광주의 화랑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화랑가를 돌다가 의재의 낙관을 보고 최 위원장에게 연락했다. 최 위원장은 의재 선생이 할아버지에게 선물한 뜻있는 그림이라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몇 달 치 월급을 털어 구입했다. 최 위원장은 “광주시민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두 분의 숭고한 삶과 인연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빠른 시일 안에 기증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재 선생의 손자인 허달재 의재미술관 이사장은 최 위원장과 선대의 연을 잇는 돈독한 친분을 쌓아왔다.

오방 선생은 걸인과 나환자들을 위한 구제 사업을 벌이고 광주 최초 청년 야학교와 유치원을 개설한 근대화의 선구자다. 광주YMCA 창설의 산파 역할을 했고 3·1운동을 주도했다. 의재 선생은 조선 후기 한국 남종화를 완성했던 허련의 후손으로, 시·서·화를 겸비한 남종화의 대가다. 광주 동구 운림동에는 의재 선생이 30년간 지내며 차나무를 가꾸고 그림을 그린 춘설헌이 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