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마이클 샌델의 시장만능 비판
‘돈이 공략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요새는 없다’는 유대 속담처럼 돈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만 한국인은 유독 돈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를 새해 인사말로 유행시킬 만큼 부(富)를 추구하면서도 돈에 대해 초연하거나 부자를 적대시해야 지성인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청년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삼성과 재벌 비판의 단골메뉴인 삼성이 같은 회사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비싼 입장권을 사면 줄을 서지 않고 놀이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미국 일부 교도소는 수감자들이 추가비용(1박 82달러)을 지불하면 호텔방이나 항공기 좌석을 업그레이드하듯이 감방을 업그레이드시켜 준다. 일부 도시에서는 교통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혼자 승용차를 운전하는 운전자가 돈을 내면 카풀차로로 달릴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권리는 15만 달러다. 이 돈으로 검은코뿔소를 번식 사육하는 데 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공공영역은 아직 돈으로부터 초연한 편이다. 반값 등록금을 줄지언정 기여입학제를 시행하자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여수엑스포에서도 비싸게 받고 전시관을 빨리 관람할 수 있는 입장권이 있을 법도 한데 국민 정서상 이런 제도는 용납되질 않는다. 이미 존재하던 예약제도 없애버리고 선착순 입장을 부활시켰다. 한 재벌이 출퇴근에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기 위해 중형버스를 구입해 타고 다닌다는 소식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정부 돈이 국민 도덕성 타락시켜
샌델 교수의 논점은 시장만능주의가 가져오는 도덕의 상실과 공동체의 파괴에 관한 것이다. 시장논리 없이 잘 굴러가던 영역에 일단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윤리는 타락하고 도덕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시장에는 시장만의 논리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교환 대상이 되면 생명 사랑 우정 등 인간 사회의 소중한 덕목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물음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