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학원강사에게만 사은 선물” 충격
며칠 전 스승의 날에 사은(師恩)의 선물을 드리고 싶은 대상이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학원 강사라는 동아일보 보도(5월 14일자)는 충격적이다. 이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필자의 체험이 다른 양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학교와 달리 학원에서는 수업을 빼먹는 일도 없으며, 장기적이건 단기적이건 배우는 학생들의 이익을 정확하게 집어내 가르치기 때문이다. 물론 열심히 가르치는 적지 않은 초중등학교 교사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학교와 학원의 양자 구도에서 학습자의 선택과 이익에 부합하는 정도가 심하게 학원 선생님들에게 쏠리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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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공부를 시키지 않는 풍토를 조장하는 학교의 지식교육 경시 풍조를 들 수 있다. 흔히 험악한 세태를 핑계로 인성교육을 위하여 지식교육을 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지식과 기능밖에 없다. 인성을 따로 떼어 가르치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따라서 인성을 올바로 가르치려면 지식을 더욱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학교 교육에 그리고 학교 선생님에 대한 실망의 발로는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왜 이지경 됐나” 교육계 반성해야
셋째, 21세기는 열린 시대니, 복잡계의 시대니, 융합의 시대니 하면서 학교 교육은 산업혁명 이후의 패러다임을 답습하는 데 머물고 있다. 이런 단순계 체제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 욕구를 수용하는 데 학교는 역부족인 데다가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하여 결코 ‘튀는 행동’을 할 수 없다. 그나마 유일한 분출구인 대학입시 난관을 해결해 주는 데서도 학교는 학원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체제에서 학생과 학부모 자신들의 교육 욕구 분출을 용이하게 해주는 학원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이번 보도로 확인됐을 뿐이다. 또 모든 사은을 뇌물로 보는 교육 당국의 ‘줄기찬’ 행정지도도 학교 선생님들의 의욕을 무력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교육 현실의 타개책은 당연히 이 세 가지를 바로잡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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